1층 들어서면 어린이들 눈높이 맞춘 음악·악기 소개 ‘흥미진진’
2층 전시실엔 ‘메시아’ 완벽 재현 바이올린 등 명품 악기 눈길
국내 최초 서양악기 전문박물관 답게 특별한 콘서트 ‘감동 선사'
오월의 햇살처럼 맑고 투명한 선율이 프라움악기박물관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고 있다. 5월19일 한낮, 어린 아이들과 동행한 젊은 부부와 80대의 노신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람객들이 클래식을 감상하고 있다. 2011년 개관부터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는 ‘수요 브런치 콘서트’가 229회를 맞았다. 피아니스트 김도영, 플루티스트 조아라, 바이올리니스트 허은혜, 첼리스트 박민혜가 협연한 정기연주회는 앙코르로 ‘아리랑’을 연주하며 마무리되었다.
프라움악기박물관(관장 김정실)은 국내 최초로 서양악기를 테마로 개관한 전문박물관이다. ‘프라움’(PRAUM)은 자부심을 뜻하는 ‘프라이드’와 공간을 뜻하는 독일어 ‘라움’을 결합한 이름으로 설립자의 철학이 들어 있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친했다는 김정실 관장은 런던, 파리, 빈 같은 유럽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경매장을 돌며 진귀한 서양 고전 악기를 수집하고 전 세계의 이름난 박물관을 두루 탐방하며 박물관을 구상하다가 2011년 남양주시 경강로 한강변에 악기박물관을 세웠다. 고전 음악을 사랑하는 경영인의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빚어낸 것이다. 4천679㎡(1,415평)부지에 연면적 2천226㎡(675평)에 중세유럽 건축양식의 박물관은 출입문부터 중후하다. 금장을 한 문에는 ‘2016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우수박물관’이라 새긴 패가 붙어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악기를 보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서양 음악가들의 초상이 전시되어 있다. 남한강의 시원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2층 전시실에서 다양한 악기들을 만난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하프의 이름은 “콘서트 그랜드 더블 액션 페달 하프”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하프 등 현악기군과 오보에 클라리넷 색소폰 등 관악기군이 전시되어 있다. 족히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낡은 악보와 유명 음악가들의 흉상도 전시실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수요 브런치 콘서트에 참석했던 관람객들이 전시된 악기들을 둘러보고 있다.
중요한 유물은 중앙을 차지하는 법이다. 파리의 명기 제작자로 유명한 장 밥티스트 비욤(1788~1875)의 ‘메시아’가 전시된 곳에 한 가족이 모여 있다. “1873년에 메시아 1716을 복제한 이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완벽한 재현품으로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걸작 ‘메시아’는 최고의 명기(名器)라는 의미로 제작자 비욤의 사위가 붙인 칭호인데,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작업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절대적 기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요.” 음악회 사회를 맡았던 박춘석 학예실장의 설명이다. 박 학예실장은 박물관 개관전부터 함께 한 주역으로 악기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이런 명품을 현대의 연주자들이 탐내는 까닭은 악기의 성능이 여전히 좋기 때문입니다.” 진품 악기들 사이사이로 악기와 관련된 예쁜 조각과 도자기를 배치해 두어 눈을 즐겁게 한다. 아이들에게는 수억 원 하는 명기보다 이런 소품들에 눈길이 먼저 갈 것이다. 곳곳에서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1층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이 여러 곳이다. 인형으로 아이들에게 음악과 악기를 소개하는 공간이 특별하게 들어온다. 화려한 색과 그림으로 단장한 피아노가 가득하다. 기증을 받은 피아노에 그림을 그린 것들이다. 미술과 음악의 어울림이다. 첼로들이 걸려 있는 방도 있다. 유명 화가들이 첼로 연주를 반복해 들으며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음악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파격적인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악기가 진화한 현장을 보다
포르테피아노는 18~19세기 초에 사용되었던 초기의 피아노인데 모양은 하프시코드와 비슷하지만 소리는 사뭇 다르다. 피아노의 전신으로 알려진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는 이름도 처음 듣는 것이다. 현재도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보존이 잘 된 악기들이다. 위대한 옛 피아노 제작가 존 브로드우드(1732~1812)의 이름을 새겨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브로드우드사’의 포르테피아노를 즐겨 사용했다니 그의 명성과 실력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명품 악기는 소리만 좋은 게 아니라 외관도 최고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박 실장이 전시된 피아노를 비교하며 악기의 진화 과정을 알려준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나 ‘운명 교향곡’ 같은 작품은 ‘피아노 프르테’의 발전과 관련이 깊습니다. 작은 망치로 줄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피아노 포르테’는 약하게(피아노) 또는 강하게(포르테) 연주할 수 있지요. 이전의 ‘쳄발로’는 건반으로 강약을 조절할 수 없었기에 ‘피아노 포르테’가 등장하면서 밀려나게 됩니다.”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은 이해할 것 같다. 박 실장의 설명처럼 악기의 진화는 음악의 진보로 이어진다. 피아노가 진화하면서 음들을 부드럽게 늘이듯 연주하는 ‘레카토’와 음들을 톡톡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처럼 새로운 연주기법이 개발된다. 피아노의 완성에 베토벤의 열정이 더해져 서양음악은 고전기를 벗어나 낭만기로 들어선다.
영국의 유명한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에드워드 벤자민 브리튼(1913~1976)이 1961년까지 소유했던 그랜드 포르테 피아노는 1808년에 제작된 것이다. 영국 왕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한 브리튼은 ‘심플 심포니’와 오페라 ‘빌리버드’, ‘한여름밤의 꿈’ 같은 작품을 남겼다. 1897년에 스타인웨이사에서 만든 ‘6피트 그랜드피아노’는 상감으로 장식된 화려한 꽃무늬가 일품이다. 100년도 더 된 이런 악기들이 지금도 연주하기에 좋은 소리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전시장 한쪽, 유리벽 너머는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관람객들에게 개방돼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간이다. 한 여자아이가 조립한 바이올린에 예쁜 그림을 그리고 있고 또래의 남자아이는 옆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다. 1층에는 ‘봄이오면’ ‘바위고개’를 작곡한 이흥렬(1909~1980) 선생의 음악사 및 친필 악보와 기증 피아노를 볼 수 있는 특별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시민에게 다가가는 박물관
매주 열리는 수요브런치 콘서트는 230회를 맞게 된다. 수요일에 찾아 전시관을 둘러보고 음악회를 즐기는 것도 좋겠다. 110회를 맞이하는 프라움 토요콘서트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저녁 8시에 진행된다고 한다. 2021년 프로그램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은 “회복과 문화예술”을 테마로 전문 강사와 연주자를 초청하여 7월 1일 11월 30일까지 매주 목요일 11시부터 13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소주제는 ‘문화와 박물관 미술관’ ‘문화와 음악’ ‘문화와 실학’ ‘문화와 클래식 음악’ ‘문화와 대중 음악’ ‘북유럽 문화와 휘게’이다. 경기도 문화의 날, 경기도 지역문화예술플랫폼 사업인 특별 기획전도 준비 중이다. 프라움 악기박물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니 방문 전에 전화로 문의하는 것이 안전하다.
박춘석 실장은 대화 속에서 “정성”과 “감동” 그리고 “감사”라는 단어를 자주 반복한다. 실재 콘서트를 진행하고 인형극을 진행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의자까지 정리하는 1인 5역을 감당하고 있지만 표정이 무척 밝다. 좋아하는 음악, 악기를 알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 모습이 아름답다.
남양주에는 수준 높은 박물관이 여럿이다. 프라움악기박물관 가까이에도 남양주시립박물관과 실학박물관, 미호박물관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우석헌자연사박물관, 서호미술관이 있다. 박물관을 나와 강변을 산책하다가 담헌 홍대용(1731~1783)을 떠올렸다. 담헌이 공부한 석실서원 터가 박물관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석실마을에 있다. 북경 천주당을 찾은 담헌은 즉석에서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해 서양 선교사들을 놀라게 했던 실학자이다. 담헌은 바흐, 하이든과 동시대 인물이다. 이처럼 동서양은 음악으로 이미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배를 채웠다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강변을 달려보는 것도 좋겠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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