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인권·평화 가치 다시 한 번 되새기자

6월의 초여름, 신록이 무성한 법화산에서 물푸레나무를 만났다. 그리스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의 무적 영웅인 아킬레우스의 창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나무다. 산속의 작은 개울가에 아름드리로 자라는 나무로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푸른색이 우러나온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물푸레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지역이어서 지명이 붙여진 곳이 용인 시에 있는 법화산 아래 ‘물푸레 마을’이다. 자연의 이름을 가진 만큼 공기 좋고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지만, 한국전쟁 시 이곳 주변은 가장 치열한 전투였던 ‘선더볼트 작전(천둥번개 작전)’의 중심지역인 ‘검단 지맥’의 시작점이었다.

서울 재탈환을 위한 UN군의 총 공세 작전으로 1951년 중국 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의 대공세에 맞서 ‘매슈 리지웨이 장군’의 지휘 하에 국군 6사단과 미군 24사단, 그리스 연합군이 함께 실행한 반격 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유엔군의 서울 수복 전투를 준비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됐다.

법화산 정상에는 당시 치열했던 전투 중 이곳에서 전사한 우리 국군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용인시와 육군 제55보병사단이 74구의 전사자 유해와 유품 500점을 발굴하고 ‘평화의 쉼터’라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산화한 국군 전사자 유해의 팔목 뼈에서는 주인과 운명을 같이한 손목시계가 채워진 채 발굴되기도 했다.

녹음 속 무심코 지나치는 산행의 길목이지만 오늘 내가 걷는 산길의 어느 한 편에서는 피묻은 전쟁을 치르던 용사의 가냘픈 신음이 들릴 듯하다. 반세기도 훨씬 더 넘는 시간 동안 이산의 골짜기에서 조국을 지키다 아무 표지도 없는 채 뒤엉켜 묻혔을 주검과 이를 지켜보았을 물푸레나무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올 뿐이다.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무명용사의 몇 조각의 뼈는 우리에게 평화가 왜 필요한가를 말해주는 역사의 뿌리에 여전히 박혀 있는 뼛조각들이다. 멈춰 버린 시간이었기에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처럼 처연함은 더 깊이 느껴진다. 이곳에 남은 국군의 희생은 역사 속에 고요하다.

호국보훈의 6월은 전쟁의 아픔을 포착하고 그 안에서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것을 의미하는 시간으로서 기념돼야 한다. 71년 전 오늘, 나라를 지키고자 순국한 조상의 정체성은 영웅적 덕목이나 계보적 가치의 크기를 기준으로 측정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역사의 지평에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용돼야 한다.

역사에서는 오직 끊임없는 것만 변한다는 말이 있다. 평화를 위한 노력도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인류 역사에서 좋은 전쟁은 결코 없었다. 여전히 한반도의 긴장은 계속되고 산하는 동강나 있지만, 우리에게는 어떤 방식의 전쟁도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가 필요하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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