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집단면역’ 형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희망도 잠깐.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풍토병이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와 함께 사는 삶’으로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K방역의 성공 요인과 문제의식을 거칠게나마 간략하게 제시해보고자 한다.
한국은 현재까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방역을 이뤄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 성공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정부의 전문성과 신속성, 그리고 이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신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2003년 사스와 2013년 중동 호흡기증후군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방역시스템을 체계화하고 대응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의 방역원칙 아래 방역 전문가 집단과 질병관리청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신뢰와 적극적인 협조를 견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앙부처, 17개 광역자치단체 및 18개 지방경찰청이 함께 진행했던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도 큰 위력을 발휘했다. 국무총리를 본부장으로 영상대책회의를 거의 매일 진행했으며 주요 지자체 코로나19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조치상황에 대해 공유했다. 방역수칙에 대한 이행력 강화방안과 조치 현황, 권고안 등의 논의가 실시간으로 이뤄질 수 있었기에 효과적인 방역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었다.
우수한 공중보건체계, 의료진과 지자체 공무원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 있는 보건소와 공중보건의사 등의 우수한 공중보건체계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성공 요인이다.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인 의료진, 휴일도 반납하고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상황근무, 임시생활시설 운영, 방역 및 물품지원 업무 등에 최선을 다한 지자체 공무원들, 그들의 고군분투가 있었기에 K방역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위기 극복을 위해 언제나 팔을 걷어붙였던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민들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방역의 주체라는 인식을 갖고 거리두기에 동참했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마스크 제작과 배분, 장애인 구호와 공동 자가격리, 실업예방과 취약계층 안전망 구축을 위한 연대 활동 등을 펼쳤다. 공공서비스 폐쇄조치로 인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시민들이 방치되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는 자발적으로 정부의 한계를 보완해 가고 있다.
인류사를 보면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고 질병의 근본 원인은 감추고 구조적인 해결책은 늘 제쳐놓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 <문명>에서도 전염병 페스트가 인류를 휩쓸면서 서로 헐뜯고 공격하다 인구가 8분의 1 수준으로 몰락한다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제 작년 코로나19가 발생한 국가의 국민과 확진자를 향한 심한 욕설과 혐오가 난무했던 상황을 기억해보면 한국도 예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정치적 목적과 상업적 이득을 위해 생산되는 가짜뉴스는 혼란과 불신을 부추기며 방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영웅주의 서사와 리더십에 의존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위기 시 관련 조직, 체계, 자원의 신속한 작동, 방역ㆍ의료 인력의 안전과 적절한 보상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개인의 희생과 리더의 역량에 따라 방역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할 것이다.
오현순 공공의제연구소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