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젊은이들의 실사구시

교육과 관련된 문제는 한국사회의 최대 쟁점이자 과제다. 지나친 교육열에 대해 긍정적인 시선과 부정적인 시선이 늘 함께 해왔고 어느 한 입장을 온전히 지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교육 현장의 경험이 있던 필자의 입장에서 교육 변화의 주체는 학생들이었다. 스스로 미래를 선택해 가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갔고 그 이면에는 기존의 학력에 대해 불신이 내재해 있었다. 소위 일류 학교라고 하는 프레임이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학생들 스스로 결정한 이념의 토대는 실사구시였다.

조선 후기 사회철학의 한 배경이자 우리가 그토록 내세우고자 한 이 실학의 큰 이념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 의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어른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리는 형국을 여러 번 봐온 것이 사실이고 보면 실사구시라는 동일한 이념의 구현이 서로 다르게 추구돼왔다는 생각을 버릴 길이 없다.

학문을 통해 사회적 우위를 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득권적 삶을 사는 것은 실사구시의 이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터다. 아무도 학생들에게 실사구시의 실제를 가르친 바 없지만 그들 스스로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 최선으로 선택한 결과가 실사구시라 할 수 있다. 대학 전공에서부터 사회의 구체적인 영역까지 뻗쳐 있는 실사구시의 뿌리를 잘 다독여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어른들의 역할일 것이다.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젊은이들의 입지가 좁아졌다. 더 난망한 일은 부모의 일을 자식들이 세습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의사나 법률가들은 물론 대기업 노동자들도 자식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세습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가는 젊은이들에게 제도적으로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그 제도를 만드는 일조차도 실사구시의 정신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

선거용 선심은 실사구시와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에 대한 지원에 자신의 욕망을 투여하는 일은 죄악이다. 그들은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사 그 자체다.

우대식 시인·경기민예총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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