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8.여주시립 폰박물관

2008년 이병철 관장이 세운 사립박물관...여주시에 유물 기증 ‘시립’ 재탄생 명소화
입구에 거대한 이동통신 기기 모형 눈길, 세계 최초 상용화 휴대폰 등 4천점 전시

여주시 연양동에 위치한 여주시립 폰 박물관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휴대전화 박물관으로 4천여점에 이르는 유물과 자료를 통해 휴대전화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 여주시립 폰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6월29일 오전 9시 여주행 버스에서 반가운 뉴스를 본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시기에 제작한 금속활자 실물을 찾았다는 소식이다. 세종의 영릉이 있는 역사의 고장 여주로 가는 차 안에서 이런 소식을 접하니 기분이 묘하다. 초여름 여강의 풍경이 평화롭다. 휴대폰을 꺼내 황포돗배와 강 건너 천 년 고찰 신륵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다가 문득 ‘폰’이란 단어를 검색한다. 폰은 ‘목소리’를 뜻하는 그리스어이고, 1876년에 전화기가 발명되면서 멀리 가는 목소리를 뜻하는 ‘텔레폰(telephone)’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여강을 사이에 두고 천 년 고찰 신륵사와 마주한 ‘여주시립 폰박물관’에 도착하여 주변을 둘러본다. 안테나를 세운 거대한 폰 왼편에는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한 아이폰이 있고, 오른편에는 삼성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의 역사는 아직 20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 사연은 너무나 풍성하다. 폰박물관은 2008년 설립자 이병철 관장이 여주시 점동면 당진리에 세운 사립박물관이었으나 이 관장이 유물을 여주시에 기증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터전을 옮기고 시립박물관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여주시립 폰박물관’은 4천점에 이르는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우은경 씨와 함께 개관 때부터 안내와 전시해설을 맡고 있는 도슨트 정지혜씨가 해설을 맡아준다.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1400여대의 휴대전화 중 가족이 함께 자신이 사용해본 핸드폰을 찾아볼 수 있는 휴대전화 벽화.  윤원규기자

■백범 선생을 살린 전화부터 세계 최정상의 국산 스마트폰까지

19세기 말 그레이엄 벨이 만든 액체전화기 앞에 선다. 액체전화기는 폰 역사의 출발점이다. “전화기가 처음 만들어진 1876년 3월10일, 벨이 전화기를 만들어 최초로 한 말은 ‘왓슨,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줘!’였어요. 벨이 전화를 걸다가 황산병을 엎질러 옷에 불이 붙자 다급하게 외친 말이라고 해요. 멋진 말을 준비했을 것인데 좀 아쉽죠?” 액체전화기로 시작한 전화기는 자석을 사용하면서 성능이 크게 향상된다. 전시관에는 1800년대 후반 스웨덴 에릭슨사에서 만든 전화기, 1877년 미국에서 생산된 벽걸이형 전화 교환기 등 희귀 통신장비 4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인 중에서 전화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고종이다. 최초의 전화기에 얽힌 감동적인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일본군 장교를 죽인 후 체포되어 인천 감옥에 갇혀 있었죠.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고종이 급히 전화를 걸어 김구 선생의 목숨을 살렸다고 해요.” 창덕궁과 인천에 전화선이 가설된 날짜가 사형 선고 사흘 전이라는 일화는 한편의 사극 드라마처럼 극적이다. 고종이 사용했다는 벽걸이형 전화기는 스웨덴 통신회사 에릭손이 만든 것인데 아름다운 공예품 같다. 두 분의 도슨트도 이 전화기를 박물관의 대표 유물로 소개한다. 1897년 12월 ‘독립신문’에 한성 여덟 마을에 전어기를 가설했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전화기의 보급은 빠르게 진행된다. “이것은 1940년대에 일본에서 제작한 것인데 임시정부에서 사용했던 모델이라고 해요.” 손때 묻은 검정색의 투박한 전화기 아래 ‘김구 선생 전화기’란 이름표가 붙어 있다. 백범 선생이 전화기의 역사 초반에 두 번이나 등장하다니, 뜻밖이다. 4ㆍ19가 일어난 1961년에 태흥정밀이란 기업이 한국 최초의 국산전화기를 생산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안테나가 사람 키보다 큰 무전기가 눈길을 끈다. “군용 무선전화기는 휴대전화의 진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지요. 1950년 한국전쟁 때 사용했던 무전기랍니다.” 휴대폰 등장 이전인 1982년에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기가 등장했다는 사실도 기억할 일이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휴대폰인 삼성의 SH-100입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선보인 것인데 몇 대밖에 생산하지 않아 전 박물관장님이 몹시 어렵게 구했다고 합니다.” 후발기업 삼성전자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보고 들으니 더욱 실감 난다. “세계 최초로 휴대폰을 생산한 모토로라,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제작한 노키아조차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했는데, 참 놀라워요.”

삐삐부터 스마트폰까지 1400여대의 휴대전화 중 가족이 함께 자신이 사용해본 핸드폰을 찾아볼 수 있는 휴대전화 벽화.  윤원규기자

최초의 스마트폰은 ‘IBM 사이먼’이다. 1996년에 스마트폰을 선보였던 노키아의 역사가 흥미롭다. 와이파이와 카메라를 장착하며 스마트폰을 선도하던 노키아는 2007년부터 애플의 등장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간다.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애플은 스마트폰의 역사를 다시 쓴다. 2007년에 휴대전화, 아이팟, 인터넷 기능을 합친 아이폰을 출시한 애플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한다. LG전자와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 삼성이 2009년에 안드로이드를 내장한 갤럭시를 출시하면서 스마트폰 강자로 성장한다. 반면 가전업계의 최강자인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21년 4월,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다. 첨단 산업의 세계는 이처럼 극적이다.

3천대나 된다는 휴대폰 중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어떤 것일까? 소 학예연구사는 1983년 미국 모토로라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다이나텍(Dynatac) 8000’과 삼성전자가 2000년에 만든 세계 최초의 카메라폰 SCH-V2000은 주목할 ‘유물’로 소개한다. 1988년에 생산한 최초의 모델 SH-100은 삼성전자가 서울올림픽을 찾은 외국 귀빈들에게 주기 위해 개발한 것인데, 무게가 700g이나 나간다. 폰박물관을 설립한 이병철 전 관장은 SH-100A를 2007년에 입수한다. 한국에 없는, 외국에 수출한 국산 휴대전화와 외국산 전화도 빠뜨리지 않고 수집한다. 지금은 너무 흔해, 쉽게 버리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 세종시대에 만들어진 물시계나 해시계처럼 보물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런 집념과 정성이 세계 최초이자 세계에서 유일한 폰박물관을 만들어낸 힘이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의 휴대전화들. 윤원규기자

■‘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일곱 글자가 이루어낸 기적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뿌리내린 스마트폰의 역사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달리 있을까. 휴대전화 원조로 꼽히는 무선 송수신기 SCR-536을 미국이 선보인 건 1941년이다. 국내에 휴대전화가 첫선을 보인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다. “이전에는 간첩이 사용할까 두려워 이동통신을 민간에 개방하지 않았다고 해요. 안보를 앞세우던 시절의 풍속이죠.” 1988년에 국내에서 처음 사용된 외국 휴대전화의 가격이 500만원 대였는데, 국산 첫 휴대전화는 165만원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심슨, 스타워즈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 모습의 전화를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삼성 폴더형 휴대전화 회로기판에 ‘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글이 써져 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나온 제품이다. 1996년에 출시해 대박을 터트린 모토로라 제품을 뛰어넘겠다는 한국 엔지니어들의 각오를 새긴 것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열정과 믿음이 오늘날 휴대전화 강국을 만들어낸 동력이다. 이후 한국은 꿈을 이룬다. 최소형 폴더, 듀얼 폴더, MP3 뮤직폰, 카메라 내장폰, 손목시계형 전화, TV폰 등 ‘최초의 제품’을 잇달아 세계 시장에 내놓는다. 스마트폰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다. 현재 폰 박물관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전시된 휴대전화 소개는 2018년에 멈춰 서 있다. 이 관장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휴대전화에는 한국 전자통신 산업의 성장과 당시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조어에서 짐작되듯 스마트폰은 세상을 ‘확’ 바꾸었다. 오는 주말에는 여주폰박물관을 찾아보자. 영릉을 찾아 소나무숲 길을 걸으며 15세기 조선의 문화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세종의 리더십을 이야기해 보자.

(왼쪽부터) 1983년 출시된 세계최초 민간용 휴대전화인 모토로라의 다이나택 8000X. 10시간 충전 후 30분 통화가 가능했다./대한민국 휴대전화 역사 중 수출폰, 기억에 남는 광고 폰 등 22가지 테마를 만날 수 있는 주제관./모스신호부터 스마트폰까지 무선통신의 역사 흐름을 볼 수 있는 역사관의 모습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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