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9.여주곤충박물관

표본관 전시 곤충 대부분 ‘외국산’ 눈길 사로잡아
2관은 살아 움직이는 곤충 가득 방문객 흥미진진
정글탐험실떮파충류체험관 ‘산교육장’ 인기 코스
식량부터 로봇까지 응용 ‘곤충의 세계’ 한눈에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 등 세계의 다양한 곤충표본을 만날 수 있는 표본관. 윤원규기자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 등 세계의 다양한 곤충표본을 만날 수 있는 표본관.윤원규기자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면 빠지지 않던 과제가 곤충채집이다. 다른 숙제는 뒤로 미루지만 ‘곤충채집’은 서둘렀다. 재미난 놀이였기 때문이리라. 기다란 삼 속대 끝부분을 꺾어 삼각형을 만들어 묶고 거미집을 찾아 나선다. 삼각형 부분에 거미집을 서너 개 감으면 준비 끝. 높다란 나뭇가지에 앉은 참매미나 눈치 빠른 고추잠자리도 상처 하나 내지 않고 잡는다. 참나무 줄기를 뒤져 사슴벌레를 찾아내고, 모깃불을 피우고 멍석에 누워 별을 세다가 불빛을 보고 날아든 하늘소를 잡고 기뻐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곤충을 잡으러 산으로 들로 쏘다니다보면 어느새 방학은 끝나고 저물녘이면 귀뚜라미가 우는 초가을이 시작된다. 매미, 잠자리, 사슴벌레, 하늘소, 귀뚜라미는 모두 다리 여섯에 날개가 넷이다. 물론 독자들도 알 것이다. 다리 여덟 개를 가진 거미는 곤충이 아니라는 사실을.

곤충체험관에서는 장수풍뎅이, 넓적사슴벌레, 사마귀, 풍뎅이 유충 등 다양한 곤충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윤원규기자
곤충체험관에서는 장수풍뎅이, 넓적사슴벌레, 사마귀, 풍뎅이 유충 등 다양한 곤충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윤원규기자

■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곤충의 신비로운 세계

곤충은 사람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최근, 호주에서 배에 공기 방울을 안고 물 표면 아래서 자유자재로 걷는 딱정벌레가 발견되었다. 물의 표면장력을 이용해 물 표면을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져 다니는 소금쟁이의 모습을 거울에 비춘 듯 물속에서 물 표면을 거꾸로 선 자세로 자유롭게 다니는 물땡땡이과 딱정벌레다. 소금쟁이를 흉내 낸 소형 로봇은 이미 개발되었으니 딱정벌레를 닮은 새로운 로봇도 머잖아 개발될 것이다. 중력에 구애 받지 않고 천장을 걸어 다니는 파리나 자유자재로 비행방향과 고도를 바꾸는 잠자리처럼 곤충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신기하고 놀랍다. 진화하며 다듬어진 몸매도 환상적인 곤충들의 생태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일깨우는데 최고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거의 모두가 ‘곤충기(bug period)’를 거친다고 한다. 그만큼 곤충은 매력적인 생명체다.

여주시 능현동 162번지에 자리한 여주곤충박물관(관장 조미숙, 김건우)은 어른들에게는 유년의 추억을 소환하고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생태박물관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여주곤충박물관 김건우 관장은 경북대학교 생물응용학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다. 김 관장은 올해부터 모교인 경북대학교 학보에 ‘충황제의 곤충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김곤충’이던 별명이 대학생이 되면서 “충황제”로 진화한 것이다. ‘곤충기’로 유명한 장 앙리 파브르나 통섭학을 개척한 한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빼어난 필력은 생명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김 관장의 문장도 맛깔나다. 식용곤충의 산업화의 가능성을 살펴 본 ‘바퀴벌레에서 새우 맛이 난다면’을 비롯해 이름과 생태가 특별한 ‘가뢰’, 이름은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마귀’와 ‘장수말벌’은 물론 모기나 파리처럼 인간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고 귀찮은 존재 ‘해충’에 대해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나이는 스물 둘이지만 곤충박물관 관장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전화로 취재 약속을 잡을 때 김 관장의 아버지 김용평씨가 강조한 말뜻을 이제야 알겠다.

여주시 상거동에 위치한 ‘여주곤충박물관’은 곤충으로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교육 및 정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래 식량 대체 자원으로 주목 받고 있는 곤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여주곤충박물관 전경.윤원규기자
여주시 상거동에 위치한 ‘여주곤충박물관’은 곤충으로 아이들의 생명에 대한 교육 및 정서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미래 식량 대체 자원으로 주목 받고 있는 곤충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여주곤충박물관 전경.윤원규기자

■ 곤충을 사랑한 소년, 최연소 곤충박물관 관장이 되다

“우리나라엔 벌레를 하찮게 여기는 사상이 있는 것 같아요. ‘벌레 같은 놈’이 상대방을 나쁜 의미로 빗대는 말인 데서도 알 수 있죠. 하지만 전 ‘벌레 같은 놈’이 되고 싶어요. 벌레는 정말 위대하거든요. 장수풍뎅이는 자기 몸의 850배를 들 수 있답니다. 전 다시 태어난다면 사슴벌레로 태어나고 싶어요!”(2012년 8월 ‘소년조선’)

곤충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파충류도 만날 수 있다. 파충류 전시관의 모습.윤원규기자
곤충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파충류도 만날 수 있다. 파충류 전시관의 모습.윤원규기자

초등 6학년 13세에 여주곤충박물관 교육팀장을 맡아 관람객들에게 곤충의 세계를 설명하던 김건우 군의 선언이다. 어언 9년이 흘러 22세 청년으로 성장한 김건우군은 올봄에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관장에 취임한다. 짐작하듯이 곤충에 대한 김 관장의 지식은 국내 최고수준이다. 김 관장이 곤충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6세 때, 엄마를 따라 꽃집에 갔다가 사슴벌레 한 쌍을 받아 기르면서 시작되었다. 온종일 사슴벌레를 관찰하다 반해버린 아이의 머릿속은 이때부터 곤충 생각으로 가득 찼다. 곤충 관련 책들을 사 탐독하고 곤충들을 기르던 소년은 중학생이 되면서 곤충연구의 선진국인 일본의 박물관을 방문하고 전문서적을 구해 읽는다. 그런 오빠를 지켜보며 자란 여동생도 곤충 전문가로 성장한다.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곳저곳을 수소문하다가 여주곤충박물관 이지윤 관장을 알게 된다. 이 관장은 ‘곤충박사’인 13세 건우에게 교육팀장을 맡긴다. 주말이면 여주로 내려와 교육팀장으로 활동하던 소년은 곤충박물관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 소년의 꿈은 곧 이뤄진다. 건강이 나빠진 이 관장을 대신해 건우네 가족이 박물관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인수 초기에 적잖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지만 한마음으로 뭉친 가족들은 이를 이겨내고 현재의 터에 자리를 잡는다.

파푸아뉴기니에 서식하는 아돌피네사슴벌레 표본. 윤원규기자
파푸아뉴기니에 서식하는 아돌피네사슴벌레 표본. 윤원규기자

■ 인류의 미래를 열어갈 곤충들의 세상

가장 유심히 살펴야할 공간은 1관 표본관이다. 입구에 아버지 김용평, 어머니 조미숙 관장, 김건우 관장, 여동생 가족사진이 반긴다. “전시된 표본은 모두 제가 만든 것입니다.” 표본 전시된 곤충들은 대부분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외국산이다. 콜롬비아, 말레이시아 반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남아메리카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곤충들이다. “대벌레는 너무 커서 액자에 넣지 못한 것입니다.” 제비나비와 큰줄흰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모시나비는 언젠가 보았던 한국산이다. 아틀라스산누에나방의 두 날개 끝은 영락없는 뱀의 머리다. 생존을 위한 진화의 흔적일 것이다. 이 많은 곤충들을 구입하고 약품처리 하여 표본을 만든 김 관장의 표정과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난다. “딱정벌레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지요. 그중에서도 장수풍뎅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애는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놈이에요.”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헤라클레스 원명아종’을 소개하는 김 관장의 목소리가 노래하듯 운율이 실린다. 김 관장의 연구실은 새로운 표본이 만들어지는 곳이자 놀이터다. 곤충탐구관인 2관에 들어서면 표본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곤충을 볼 수 있다. 특별전시관(3관)을 보고 계단으로 통해 2층으로 이동하면 정글탐험실(4관)이 기다린다. 곤충체험관(5관)은 손으로 곤충을 만져 볼 수 있는 곳. 6관과 7관은 파충류전시관과 파충류체험관으로 꾸며놓았다. 1층에 유료체험실도 마련되어 있으니 아이들과 한나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율리세스제비나비 표본.윤원규기자
인도네시아에 서식하는 율리세스제비나비 표본.윤원규기자

현재 지구에 인구 한 사람당 2억 마리가 넘는 곤충이 살고 있다니 지구는 말 그대로 ‘곤충의 행성’이다. 동식물 사체와 배설물을 유기물로 분해해 토양의 순환을 돕고, 식물의 수분을 옮기고 종자를 퍼뜨리며, 인간에게 꿀과 잉크, 항생제와 방부제, 광택제와 접착제를 제공한다. 오래 전부터 곤충의 습성과 생태를 산업에 활용했다. 첨단 산업인 드론 비행도 곤충을 모방한 것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플라스틱을 처리하는 놀라운 곤충도 있다. 갈색거저리 유충인 밀웜과 꿀벌부채명나방은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는 데 500년이나 걸리는 플라스틱을 먹어 치운다.

곤충은 오래 전부터 로봇 산업이나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 활용되고 있다. 식량부터 로봇까지 여러 분야에서 곤충의 남다른 능력을 응용하고 있다. 여주곤충박물관은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곤충산업에 종사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도 진행하고 있다. 곤충으로 펼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실을 보여주는 김 관장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 있다. “저의 책임이 너무나 막중합니다. 이곳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뿐이거든요.”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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