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600년 만에 나온 한글 금속 활자

“이건 조약돌이 아니라 금속활자입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피맛골 재개발 지구 공평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 부지 내 유적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수도(首都) 문물 연구원 조사단원들은 예상치 못한 발견에 탄성이 쏟아졌다. 15~16세기 민간 땅속에서 화약 무기 총통과 함께 드러난 도기 항아리 옆구리 구멍 사이로 조약돌 모양의 덩어리 몇 개가 빠져나왔는데 씻고 살펴보니 광택이 나는 금속활자로 드러난 것이다.

항아리 안 내용물을 뜯어본 결과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5~16세기에 제작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천600여점(한자1천여점 한글600여점)이었다. 특히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동국 정운식 표기법을 쓴 금속활자가 처음으로 실물 확인됐다는 점이 주목된다.

세종의 명령에 따라 최초로 표준음을 정리한 동구정음 등을 새겼다. 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 센터 팀장은 1500년대 들어서면 동국운식 표기법이 사라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에 발견한 활자들이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한글을 새긴 가장 빠른 시기의 금속활자인 셈이다.

전하는 예가 극히 드문 연주활자(連鑄活字)이며 같은 두 글자의 한글 토씨를 인쇄 편의상 한 번에 주조한 활자도 10여 점이 출토됐다. 전문가들의 감식에 의하면 1446년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를 즈음해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조선 초기 의 한글 금속활자 실물과 세종대인 1434년 만든 금속활자본의 걸작 갑인자로 추정되는 활자 실물이 처음 출현했다는 분석이다. 활자들 일부는 독일인 구텐베르크가 1450년대 서양 최초로 금속활자 활판 인쇄를 시작한 때보다 수십 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금속활자 1천600여점 외에도 16세기 중종대 쓴 것으로 보이는 자동물시계 시보 장치 부품인 주전(籌箭)과 세종대인 것으로 추정되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들 중종~선조 때 화기인 총통류 8점 동종(銅鐘)1점 등도 같은 유적에서 함께 발굴됐다고 덧붙였다. 역사적 가치가 가장 높다고 평가되는 출토품은 한글 금속활자 실물들이다. 이번에 확인된 출토품들은 총통까지 더해 모두 금속제이고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나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이에 재활용을 염두에 두고 함께 묻었던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과 오경택 연구원장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시기상 가까워 전란을 맞으면서 가치 있는 금속제 유물들을 묻어두고 피난갔다 회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옛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천하를 잃고 바다 건너 대만으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귀중한 문화유산을 자기 몸같이 소중히 옮겨 안전하게 보호해 놓은 실례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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