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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크리에이터] 테라리움 통해 지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는 ‘그린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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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크리에이터] 테라리움 통해 지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는 ‘그린튜터’

▲지난 28일 오후 3시경 찾아간 일산 대화동 성저마을 상권은 마치 회색 빛으로 죽은듯 적막했다. 활력 잃은 이곳에 식물작업실 '라라그레이스'가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28일 오후 3시경 찾아간 일산 대화동 성저마을 상권은 마치 회색 빛으로 죽은듯 적막했다. 활력 잃은 이곳에 식물작업실 '라라그레이스'가 동력을 불어넣고 있다. 

 

왜 이렇게 고요할까. 지난 28일 오후 3시경 기자가 찾아간 일산 대화동 성저마을 상권은 마치 회색 빛으로 죽어있는 듯했다. 불 꺼져 있는 상가도 더러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을 찾기가 어려웠다. 비좁은 도로변에 주차돼 있는 차들과 어쩌다 한두대 지나가는 차만 있을 뿐 거리에 적막감이 감돈다. 초록과는 대조되는 색을 가진 동네. 이곳에 한 식물작업실이 활력 잃은 주변을 초록빛으로 비춘다.

작업실 이름은 라라그레이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초록초록하다. 여기에 하하호호 깔깔웃음소리마저 싱그럽다. 상가들을 지나쳐오며 다소 숨 막혔던 기분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보는 사람마저 즐겁게 만드는 주인공들은 바로 라라그레이스 이혜라(47) 대표와 식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수강생이다.

지역민 창업 기회 제공하는 행복한 교육 테라리움

▲라라그레이스 이혜라(47·왼쪽) 대표와 한 수강생이 식물로 '테라리움' 작품을 만들고 있다. 
▲라라그레이스 이혜라(47·왼쪽) 대표와 한 수강생이 식물로 '테라리움'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혜라 대표는 자신을 그린튜터(green tutor)’라고 소개한다. 다소 생소한 직업인 그린튜터는 쉽게 말해 식물 지도사다. 이 대표는 이곳에서 꽃과 식물로 자연과 멀어진 지역민들의 삶을 위로하고, 식물작품 교육을 통해 그들이 머무는 공간이 자연친화적인 힐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은 대표적으로 플랜테리어(plant+interior.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 취미클래스, 테라리움(terra+arium. 유리 용기에 식물재배) 창업클래스를 운영한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시간에는 한창 테라리움자격증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자격증 발급을 받으면 강사활동이나 창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경력단절 여성도 재취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인기다.

▲테라리움 창업클래스 자격증 과정 교육에서 수강생이 90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은 ‘다육 정원’이다.
▲테라리움 창업클래스 자격증 과정 교육에서 수강생이 90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은 ‘다육 정원’이다.

테라리움 작품을 만드는 내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 대표도, 식물을 심고 꾸미며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강생도 행복해 보인다. 90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은 다육 정원이다. 예쁜 유리 용기 안에 깔린 흙, 모래, 바위, 그리고 그 틈에 심어진 다육식물과 이끼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수강생 이연우씨(가명)는 식물도 만지고 흙도 만지니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자신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직접 만든 작품을 나만의 공간에 장식할 상상을 하면서 만드니 기분도 좋았다고 했다.

유리병 안의 작은 우주로 탄생한 작품들

▲작업실에는 이 대표가 만든 강의용 '테라리움' 작품이 진열돼 있다. 
▲작업실에는 이 대표가 만든 강의용 '테라리움' 작품이 진열돼 있다. 

교육이 끝나고 수강생이 돌아가면 혼자 남은 작업실에서 이 대표는 플랜테리어 개발 및 작품 구상을 한다. 식물작업실을 차린지는 3, 지금까지 이 대표가 만든 작품은 2천 점이 넘는다. 테라리움, 가드닝, 다육아트, 플라워, 행잉플랜트 등 디자인도 종류도 많아 무궁무진하다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업실에는 진열되어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만들어 놓기만 하면 팔리기 때문이다.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셈이다. 그나마 강의용으로 보관 중인 것이 있어 기자도 그의 작품을 몇 가지 접할 수 있었다.

▲만들어진지 무려 2년이 넘었다는 '이끼 테라리움'. 사방이 꽉 막힌 유리병 안에 물과 산소가 자체 순환하며 식물이 스스로 자라고 살아가는 테라리움이다. (밑면10cm x 높이25cm)
▲만들어진지 무려 2년이 넘었다는 '이끼 테라리움'. 사방이 꽉 막힌 유리병 안에 물과 산소가 자체 순환하며 식물이 스스로 자라고 살아가는 테라리움이다. (밑면10cm x 높이25cm)

먼저 물도 공기도 공급이 안되는 사방이 꽉 막힌 유리병 안에 시들지 않은 식물이 들어있어 어떻게 살아있는 거지?’ 궁금증을 일으키는 작품이 있다. 앞서 수강생이 만들어간 한쪽이 뚫린 유리 용기와는 사뭇 다르다. 작품명은 이끼 테라리움’. 만들어 놓은지 무려 2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유리병 안에서 물, 산소가 자체 순환해 식물이 스스로 자라고 살아간다. 물이 식물의 뿌리로 흡수되고 기화되어 유리 벽면에 이슬로 맺혔다가 중력에 의해 물방울이 다시 흙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겪는 것이라며 원리를 설명했다. 때문에 그는 유리병 안의 작은 우주라고 표현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생태계처럼.

▲여름을 주제로 만들어진 ‘그린 바캉스’. 바닷가 정원을 표현한 작품으로, 조명까지 활용해 무드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름25cm x 높이20cm/ 지름10cm x 높이 30cm)
▲여름을 주제로 만들어진 ‘그린 바캉스’. 바닷가 정원을 표현한 작품으로, 조명까지 활용해 무드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름25cm x 높이20cm/ 지름10cm x 높이 30cm)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컨셉으로 시선을 끄는 작품들도 있다. 우선 한눈에 봐도 여름을 주제로 만들어진 걸 알 수 있는 그린 바캉스. 시원한 바다와 모래사장 위로 식물을 심어놓으니 바닷가 정원이 탄생했다. 여기에 은은한 조명까지 더해 밤에 무드등으로 활용해도 손색없을 듯하다.

▲카페를 주제로 한 작품 '식물 테이크아웃’. 선인장 코코아, 딸기라떼, 다육 도시락으로 테이크아웃 3종 세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다육도시락 : 가로20cm x 세로 10cm x 높이 10cm)
▲카페를 주제로 한 작품 '식물 테이크아웃’. 선인장 코코아, 딸기라떼, 다육 도시락으로 테이크아웃 3종 세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다육도시락 : 가로20cm x 세로 10cm x 높이 10cm)

카페를 주제로 한 것도 있다. 작품명은 식물 테이크아웃’. 선인장 코코아, 딸기라떼, 다육 도시락으로 테이크아웃 3종 세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용기나 형태 등 그 어떤 제한도 없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게 테라리움인 듯하다. 이 대표의 창작 센스가 엿보이는 이색적인 디자인들이다.

어두운 빛을 밝게 비추는 초록의 힘, 성저마을의 그린 크리에이터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장애인인권센터와 연계해 장애인들에게 플랜테리어 창작 수업을 진행했다. (사진=라라그레이스 제공)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부터 장애인인권센터와 연계해 장애인들에게 플랜테리어 창작 수업을 진행했다. (사진=라라그레이스 제공)

이 같은 식물작품은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더해주는 매력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이 대표는 많은 지역민들이 식물을 활용한 창작 수업으로 자연을 친밀하게 느끼고 힐링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 특히 육체적 재활과 정신적 회복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지난해부터 일산지역 도박문제관리센터 및 장애인인권센터와 연계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도박 중독자와 장애인들에게 플랜테리어 교육을 통해 심신 안정을 주는 방식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실제 교육을 받은 이들 대부분 효과를 봤다고 한다. 어두운 세상 속에서 초록을 마주할 때면 숨통이 틔듯 해당 교육을 통해 긍정적으로 자아를 형성했다는 것.

그러고 보면 햇살 받는 초록은 생명의 색이 맞나 보다. 이 대표는 장애인분들이나 도박 중독자분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치유 프로그램 활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영크리에이터교육도 준비 중이다. 마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플랜테리어 창작 수업을 하는 내용이다.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창의력을 높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로컬크리에이터로 꿈을 키울 수 있는 경험과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혜라 대표는 상권이 활성화된 정발산동의 ‘밤리단길’처럼 성저마을의 죽어있는 상권도 '성리단길'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혜라 대표는 상권이 활성화된 정발산동의 ‘밤리단길’처럼 성저마을의 죽어있는 상권도 '성리단길'이 되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 대표는 기자가 처음 방문 시 느꼈던 어두운 상권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혜라 대표는 성저마을 자체가 상권이 죽어있는 곳인데, 3년 전 제가 이곳에 처음으로 공방을 차리게 된 것이다. 지금은 상가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그래서 상권이 활성화된 정발산동의 밤리단길처럼 우리 동네를 중심으로 한 성리단길을 만들어 볼 계획이다. 마을의 셀러 및 공방들과 자치적으로 교육과 나눔을 실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일산지역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책임감을 갖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협력하고 발전해나갈 미래의 식물공방 창업가들을 발굴하고 최선을 다해 교육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대표는 지역 작가들과 플리마켓에도 참여해 테라리움의 가치를 전파하고, 수익금은 지역사회 기부를 통해 마을에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도 목표다.

·사진=황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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