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온통 오토바이들로 가득 찼다. 운전을 하다 보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토바이가 나타나고 사라진다. 배달(倍達)은 상고 시대부터 내려온 ‘밝은 산’이라는 어원을 가진 말이다.
예순을 바라보는 필자 정도의 나이가 된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배달의 민족을 자처했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던 말이다.
이제 젊은이들은 이러한 배달의 민족이라는 어원을 아예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물품이나 음식을 배송하는 의미로만 쓰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배달(配達)의 한 가운데 오토바이가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우리들의 삶을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오토바이의 질주는 변화된 우리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배달과 관련된 다양한 뉴스가 생산되고 배달 앱과 관련해 지방자치 단체까지 가세하는 모양새이니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문제는 속도라는 미명하에 교통법규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길 없다.
배달(配達)과 관련해 배달(倍達)의 민족 전체가 돌이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배달이 늦었다고 갑질하는 고객도 속도 만능주의를 부추기는 한 원인이 될 터이며 관련된 업체들도 속도를 담보로 사업을 확장해 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신호를 무시하고, 중앙선을 가로지르는 오토바이를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무언가 배달을 시킬 때 너무 빨리 오지 않아도 된다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먹고사는 일이니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타인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고.
이 더운 여름, 헬멧을 쓴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마음이 짠하지만 그래도 사고 없는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넘어설 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대식 시인·경기민예총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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