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川)은 ‘시내를 품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는 포천과 연천(漣川)에 시내를 가리키는 ‘천(川)’자가 들어 있다. 두 도시 이름에 나란히 들어 있는 천(川)은 한탄강(漢灘江)을 가리킨다. 북한 평강군 추가령에서 발원하여 철원을 거쳐 포천을 감싸며 흐르는 한탄강은 연천에서 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한탄강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큰 여울의 강’이다.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협곡 사이를 세차게 흐르는 한탄강은 래프팅하기에 적격이다. 일반 강과 달리 물길이 뭍에서 움푹 꺼져 들어간 한탄강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광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다.
50만년에서 13만년 전 사이에 북한 강원도 평강군의 오리산과 680고지에서 여러 차례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용암이 옛 한탄강을 따라 철원, 포천, 연천 지역을 거쳐 임진강까지 110㎞를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 평평한 현무암 용암대지 위로 수십만 년을 흘러간 강물은 현무암을 깎아내고 20~40m의 깊은 협곡을 만들어낸다. 기둥모양의 현무암 주상절리 협곡을 비롯해 베개용암, 하식동굴과 같은 중요하고 아름다운 지형을 간직한 한탄강은 오랫동안 ‘숨겨진 보배’였다. 마침내 2015년에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정을 받고 2020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면서 한탄강은 비로소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유네스코 지질공원은 ‘단일의 통합된 지리적 영역으로서 국제적인 지질학적 가치를 지니는 명소에 대해 경관의 보호, 교육, 연구,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전인적인 개념을 가지고 자연자원 및 문화자원과 연계하여 이용하는 곳’이다. 유네스코가 인증한 세계지질공원은 2020년 기준으로 44개국에 161곳 있는데, 한국은 한탄강을 비롯하여 제주도(2010), 청송(2017), 무등산권(2018) 등 4곳이다.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한탄강의 지질과 생태는 물론 역사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한탄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 신비롭고 아름다운 한탄강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
2019년 4월에 개관한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센터는 포천시 영북면 비둘기낭길에 자리 잡고 있다. 중복을 하루 앞둔 20일에 한탄강 세계지질공원센터를 찾았다. 화요일은 휴관일이라 방문이 망설여졌지만, 조한섭 팀장과 계영진 학예연구사는 “관람객이 없어 안내하기에 더 좋다”며 필자를 안심시킨다. 지질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니 초등학생을 안내하듯 쉽게 설명해줄 것을 당부한다. 용암이 흐르기 이전의 암석과 지질, 용암과 하천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 협곡, 하식동굴, 폭포 등 한탄강이 간직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계영진 학예연구사의 친절한 설명에 이내 빠져든다. 집중해서 들으니 슬슬 귀도 열린다. 아시아에는 없다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한탄강이 안겨준 보배 같은 선물이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한탄강 이야기도 재미가 쏠쏠하다. 한탄강 곳곳에 후삼국의 영웅 궁예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것은 태봉의 수도가 포천에서 가까운 철원이기 때문이리라. 현재진행형인 한민족의 최대 비극이라 할 분단은 역설적으로 한탄강의 생태를 잘 보존해 주었다. 멸종위기의 동식물들을 품어주었던 한탄강의 아름답고 건강한 자연환경은 포천의 자랑이자 미래다.
■ 생태와 인물이 어우러져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다
한탄강 지질생태 전시관은 한탄강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데 지질관, 지질문화관, 지질공원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용암이 만든 강’이란 이름의 지질관은 지금의 한탄강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지질과 암석들을 보여준다. 용암이 흘러내리는 화산모양의 설치물이 시선을 끈다. 화성암을 구분하는 기준을 알려주고, 버튼을 눌러 가상으로 화산폭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제작한 전시물이다. 티타늄을 함유하고 있는 함티타늄자철석과 국내 3대 화강석의 하나인 포천석이 눈에 들어온다.
건축 재료로 널리 쓰이는 화강암은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식어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곡식을 빻고 가는 데 사용했던 절구와 맷돌은 마그마가 지표 부근에서 빠르게 식어 만들어진 현무암으로 만들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주상절리 협곡의 풍광은 사진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머리에 베고 자는 베개처럼 생긴 ‘베개용암’은 내륙에서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힘든 것이란다. 현장에서 실물로 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화산재가 굳어져 만들어진 응회암으로 제작한 포천만의 고인돌도 눈길을 끈다.
‘삶이 흐르는 강’이란 이름을 붙인 지질문화관은 한탄강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곳이다. 한탄강 주변에는 구석기ㆍ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후삼국시대 한탄강을 호령했던 태봉국 궁예 이야기, 조선시대 한탄강의 풍광에 반해 그림을 그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그림도 볼 수 있다. 한탄강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끊임없이 찾았던 곳이다.
‘다시 태어난 강’이란 이름을 가진 지질공원관은 한탄강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한탄강은 상수원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생태와 지질이 잘 보존 되었다. 특히, 수달과 어름치 같은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멸종위기의 분홍장구채, 광릉요강꽃 같은 식물들이 사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철원-포천-연천을 가로지르는 한탄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될 것이다. 한탄강은 협곡 위에서 보는 경관도 멋있지만 협곡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풍경은 더욱 멋있다. 여름철에 래프팅을 즐기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시간이 없다면 1층에 있는 4D 협곡탈출 라이딩 영상관을 빼놓지 말 것이다.
‘한탄강에서 소곤소곤’은 지질센터가 펴낸 창작동화책의 제목이다. 계영진 학예연구사가 이 책이 발간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한탄강의 캐릭터인 진이(응회암), 탄이(현무암), 천이(화강암)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 만들어졌지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역의 초등학생들이 미술작품으로 동화장면을 만들었고, 이야기와 장면을 엮어 동화책 ‘한탄강에서 소곤소곤’이 탄생한 것입니다.” 동화책이 완성되기까지 임미현 씨를 비롯한 여러 교사와 그림을 그린 학생들, 지질과 역사를 연구하는 지질센터의 연구자들까지 공동으로 제작한 방식과 과정이 감동적이다.
■한탄강, 다시 태어나다
지질공원센터 근처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537호인 비둘기낭 폭포를 비롯해 대교천 현무암 협곡, 고남산 자철석 광산, 지장산 응회암, 교동가마소, 멍우리 협곡, 구라이골, 포천 아우라지 베개용암, 백운계곡과 단층, 아트밸리와 포천석, 예부터 명승지로 이름 높았던 화적연은 꼭 챙겨 봐야 할 지질명소이다. 한탄강을 품은 포천은 인문학의 산실이자 보고이기도 하다. “살아서는 포천 가야 양반이고 죽어서는 장단 가야 양반이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포천시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선비와 대학자들이 많이 살았다. 특히 정조시대에 북학파로 활약하며 중국까지 이름을 떨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는 포천을 사랑한 대표적 인물들이다. 영평현령을 지낸 박제가는 다산 정약용과 종두를 연구하여 최초로 시술한 인물로 영평에서 조선의 개혁안을 담은 ‘진북학의’를 저술하여 정조에게 올렸으며, 이덕무?박제가와 함께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조선 최고의 무사 백동수와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이서구도 포천에서 살았다.
한탄강은 이제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 4월16일, ‘한탄강 지질공원의 남북 공동조사 기본계획 수립 연구용역’의 중간보고회가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열렸다.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을 운영하는 경기도와 포천시와 연천군, 강원도와 철원군의 관계자들이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발전과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탄강의 발원지인 북한권역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이 제시되었다. 포천시는 지난해에도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열었는데, 이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포럼은 ‘한탄강의 초국경 지질공원 추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포천시의 시정목표가 ‘평화로 만들어가는 행복의 도시’이다. 한탄강이 품은 자연과 문화를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개발한다면, 세계지질공원센터는 지질과 평화의 전파지로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지질센터로 거듭날 것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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