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탄소국경세’로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를 핵심으로 하는 입법안 ‘핏포55(Fit for 55)’를 발표했다. 2030년까지 EU의 평균 탄소 배출량을 1990년의 55%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탄소국경세란 EU 내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수입품의 탄소배출량이 더 많을 경우 수입품에 부과되는 관세다. EU는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 역내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탄소국경세를 통해 동일한 탄소 배출에도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기업들로부터 역내 기업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이다. 이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은 그만큼 추가 비용이 들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전망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2023년부터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등 5개 분야에 우선 적용되며 3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6년부터 전면 도입된다.
미국 역시 탄소국경세 도입에 대한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바이든 대통령 집권 이후 9대 통상 의제를 담은 통상 정책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는데, 9대 의제에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탄소 국경조정세(Carbon Border Adjustment Taxes)를 포함하면서 도입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급증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 현상이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탈탄소 패러다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했을 때, EU의 이번 조치는 충분히 예견된 움직임이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과 2019년 새로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탈탄소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2050년에서 2060년 사이 탄소중립(Net Zero) 달성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0’으로 만든다는 개념으로 스웨덴, 영국, 프랑스, 뉴질랜드, 헝가리 등의 국가들은 2050년 내 탄소중립 달성을 이미 법제화했고, EU, 미국, 한국, 일본 등 다수 국가들은 2050년, 중국은 2060년을 탄소중립 목표 연도로 선언했다.
그렇지만 당장 2023년부터 도입되는 탄소국경세는 일본, 한국, 중국, 인도 등 후발 주자들에 대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고, 이산화탄소가 다량 배출되는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제조업 중에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계는 탄소배출량이 압도적인 석유화학, 정유, 철강, 시멘트 산업 등이다. 이러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기업들은 제조 에너지원의 탈탄소화, 제조 프로세스의 효율화와 환경 혁신이 요구된다. 그리고 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변화하는 추세에 대비할 수 있도록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들 위주로 세금 감면·유예 정책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탈탄소 패러다임 전환기에 파생되는 스마트 팩토리, 스마트 그리드와 같은 친환경 신기술·신산업에 대한 투자·육성에 나서야 한다. 세계적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미래경쟁력을 키워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할 때인 것이다.
박다연 한국은행 경기본부 기획금융팀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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