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손에 쥔 내 떡은 형편없이 초라하거나 작아 보이고, 남이 가진 떡은 커 보이고 맛있어 보이며 더구나 화려해 보이기까지 할까? 사촌이면 아주 가까운 가족이며 형제이지만 그가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니 누구 탓일까. 거기에 ‘못 먹는 감을 찔러나 보자’까지 간다면 그야말로 질투와 비교의식의 극치가 아니던가.
필자는 ‘사회적으로 분노의 수준을 줄이고 더욱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때를 보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며 아집 중심적 인간인 줄 알 수 있다. 상대 잘못은 한 손가락질 만큼이고 접힌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해 질책하고 엄지는 허공을 향해 있어 헛발질 아닌가. 고로 이 악물고 바뀌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지적 질을 멈추며 남의 덕임을 인정할 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울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고울까?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을 것, 자기보다 아래에 있거나 위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지 않을 것,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 것, 분노하고 싸우거나 우쭐대거나 군림하거나 생색내거나 자기 스스로를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로 인식하지 말 것, 이런 것들이 타령 아닌 남 덕, 내 탓 론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다.
하루를 살고 일생을 의미 있게 하기 위한 다짐은 애써 단련해야 하는 마음의 근육과 눈, 귀, 뇌 그리고 마음이 아닐까 한다. 배려의 수준을 높여서 살 만한 나와 남을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우리가 실천할 메인, 서브 과제와 항상 최선, 차선, 삼선의 방법을 강구해서 대처하고 실행한다. 숲과 나무를 조화롭게 본다. 항상 긍정한다. 절대 근심하지 않는다. 앞날에 대한 충언과 비전인 피드포워드의 조언과 피드백의 복습으로 조화로움 추구한다. 그래서 도착해야 할 최종 목표는 나의 처절하고 애처로운 반성과 실행뿐이다.
내 덕이고, 남 탓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것은 시샘의 심리다. 우리의 달콤한 유혹은 많은 부문 말치레에 그친다. 그동안 동거만 했을 뿐 동락은 없었는데 이젠 동고동락으로 바뀌어야만 한다. 내 덕의 근간은 ‘배려’이며 남 떡은 ‘질투’고, 남 덕은 ‘이해’이고, 내 탓은 ‘반성’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홍 한국중고배구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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