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가면무도회

가면무도회(Masquerade)는 중세 유럽 귀족들의 이벤트였다. 가면을 쓰고 사교춤을 췄다. 가면의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1268년 베네치아에서 비롯됐다. 날렵한 연미복과 화려한 드레스 차림으로 모였다, 그리고 갖가지 가면을 뒤집어쓰고 밤새 즐겼다. 그렇게 얼굴을 가리면 과연 위선도 감출 수 있었을까.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면무도회를 자주 열었던 군주였다.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에도 ‘가면무도회’란 제목의 작품이 있다. 부하의 아내와 사랑에 빠져 몰락한다는 리카르도 백작 이야기가 얼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가면무도회만 열리면 펼쳐졌다. 점잖던 신사들이 무척 대담해지고, 심지어 음탕해졌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탓이었을까.

▶같은 제목의 팝송도 있었다. 카펜터스(Carpenters)의 ‘This Masquerade’다. 1972년 발표됐다. “이 어리석은 게임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까”로 시작된다.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이젠 아무래도 좋다. 이 가면무도회에서 헛되이 시간을 보낸다”라고 끝난다.

▶지구촌은 지금 가면무도회 중이다. 사교춤만 안 출 뿐, 하루하루가 가면무도회장이다. 마스크를 쓴 채 생활한 지 햇수로 2년도 넘었다. 기괴한 고정관념들도 만들어졌다. 가까운 지인 외에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 눈으로만 사람 얼굴을 인식할 수 있을까. 타인의 감정과 속내도 알아내기가 어렵다. 마스크 쓴 얼굴이 더 친숙하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의 말에 눈으로 대충 반응해도 된다.

▶마스크의 잠재적인 심리학은 복종이다. 입과 코를 가리는 행위를 따르겠다는 명령에 동의한다는 의미다. 아예 마스크 끼는 게 더 편하다. 착각일까. 마스크를 벗으면 얼굴이나 표정이 노출될 것 같아 두렵다. K방역 성공 원인은 투명하고 민주적인 방역시스템이다. 역설적으로 마스크 착용이 서로 간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마스크를 벗는 날 서로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This Masquerade’의 노랫말이 오버랩된다. “서로 대화하는 게 무섭다” 어쩌면 우린 종말이 명쾌한 게임에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스크를 벗을 ‘가까운’ 미래가 미심쩍어서 하는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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