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기(國旗) 태극기는 국가를 상징하며 국민의 존엄성을 나타낸다. 대한민국의 이상과 전통을 구현하고 국내외로 국권을 표시, 애국심이 강한 민족은 국기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 태극기는 국기로서 충분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국가와 민족의 단결된 표상으로서 경조(慶弔)를 같이 한다. 국가 이념에 따라 국기를 바라보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국은(國恩)에 감사한다.
국기 게양은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받들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1945년 8월15일 광복 이래 격렬한 변화와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비바람이 치면 칠수록 그 격류를 헤치고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해 민족사회 발전에 의지를 굳혀왔다.
지금껏 이어져 온 태극기 변천사를 살펴보면 각기 다른 모양일지라도 저마다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현재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기증한 인물 데니와 대한제국 때부터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운동의 상징이었던 다섯 점의 태극기가 국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태극기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국인 데니(1838~1900)의 태극기다. 그도 그럴 것이 1882년 9월에 제작해 사용했다는 최초의 태극기 실물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금으로선 데니의 것이 가장 오래됐기 때문이다. 데니는 외교 고문으로 1886년부터 1890년까지 업무를 수행했다. 1890년 4년간 임기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르자 고종이 태극기를 만들어 선물했는데 이를 데니 후손이 1981년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했다.
다음은 고광순(1848~1907) 의병장이다. 그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순절한 고경영 의병장의 12세손이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 시해자를 처단하기 위해 각 읍에 격문을 띄우고 해당 의미의 불원복(不遠復)태극기를 만들어 의병부대 입구에 게양했다.
영국인 베델(1822~1907)은 러시아 전쟁이 일어나자 1904년 3월 특파원 자격으로 대한제국에 왔다. 일제 침략을 낱낱이 취재해 본국 신문을 통해 신랄하게 비난했으며 양기탁과 함께 매일신보를 창간하면서 태극기를 손수 만들어 신문사에 걸었다. 김구(1876~1949) 임시정부 국무회의 주석 시절 1941년 광복운동을 돕던 벨기에 신부 미우수 오그가 미국에 간다 하니 독립운동 자금을 호소한 글을 태극기 흰 바탕에 친필로 쓰고 서명해 줬다.
스님 백초월(1878~1944)은 1919년 11월 의친왕과 함께 제2의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1920년 진관사에서 항일운동을 결심하고 일장기에 덧칠해 태극기를 그렸다. 우리는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 태극기를 봤다. 실로 온 국민이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한다면 통일된 하나의 민족으로 새로운 한국의 시대로 열어 갈 것이다.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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