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는 일제강점기하에서 일제와 야합하여 그들의 침략·약탈 정책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며 추종한 무리 내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들을 총칭해서 가리키는 말이다. 비록 우리 사회가 친일파를 제대로 척결하지 못한 원죄로 인해 아직까지도 친일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사전적 의미의 친일파는 이미 죽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친일파의 후손조차도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라 그 재산을 회수할 수 있을지언정, 친일파라 손가락질하며 연좌제를 적용할 순 없다. 결국, 작금의 ‘친일’은 ‘독도는 일본땅’ 내지 ‘위안부는 자발적 성매매’라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진 자들에게 붙일 수 있는 “역사 앞에 진실되라”는 국민의 회초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친일’이라는 낙인을, 역사왜곡이 아닌, 일본 내지 일본인 심지어 일본 문화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사람에게까지도 무분별하게 확대시키는 듯해 심히 우려스럽다. 특히 국민통합을 위해 애써야 할 정치권이 앞장서 이런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데, 그 단적인 예가 유명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씨의 친일 논란이었다.
처음 황씨가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내정됐을 때, 임명권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의 보은인사라는 비판부터 자질논란까지 황씨를 사이에 두고 여권 대권주자들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공공기관 사장이라는 공인에 이르기 위한 일종의 검증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갑자기 황씨의 친일논란이 제기되면, 이는 검증이 아닌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버릴 비수로 변모했다.
‘친일’ 낙인의 이유는 간단했다. 황씨가 과거 우리 음식이 일본의 아류라는 식의 발언을 한 전력이 있다며, 이를 두고 경기도가 아닌 도쿄관광공사에 적합하다는 사실상 친일파 공격을 한 것이다. 물론 이후 황씨의 대응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역사왜곡도 아닌, 음식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견해와 일본 음식을 높이 평가한 기호의 영역에까지 굳이 친일의 잣대를 들이댄 건 분명 선을 넘은 것이다. 만약 동일한 잣대를 기준으로 한다면, 학창 시절 슬램덩크와 드래곤볼 같은 일본만화에 열광하고 만화는 역시 일본이라며 칭찬했던 필자 또래의 세대들 역시도 똑같이 친일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친일(親日) 과잉의 시대, 친일의 대중화를 통해 정치권이 얻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고단한 민초들의 삶을 친일이란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 달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필자의 저녁은 오랜만에 초밥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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