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친여 정당인 열린민주당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처리한다고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대한민국의 국격은 후진 독재국가 수준으로 추락할 것이다.
법안은 언론자유를 침탈하는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허위·조작 보도’를 한 언론사에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책임을 물리는 규정의 ‘허위ㆍ조작’ 기준은 모호하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어서 권력이 여러 방식으로 언론을 겁박할 수 있다.
배상액 하한선을 두고 배상액 산정을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과 연계한 것이나 부주의에 따른 오보에까지 배상책임을 지우는 것 역시 언론의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한국신문협회ㆍ관훈클럽 등 언론관련 6개 단체, 한국언론학회, 대한변호사협회는 물론 여당 편을 많이 들었던 정의당과 좌파성향의 전국언론노조조차 법안을 반대하는 건 그것이 악법 중 악법이기 때문이다. 세계신문협회(WAN-IFRA), 국제언론인협회(IPI),국제기자연맹(IFJ)도 언론자유 파괴를 우려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으니 나라에 망신살까지 뻗쳤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천연덕스럽게 언론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는 17일 창립 57주년을 맞은 한국기자협회에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정부는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안건조정위에서 악법을 처리했다. 열린민주당 소속 김의겸 의원을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앉히고 야당 의원들의 법안 숙의권을 박탈하는 폭거를 저지른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가짜임을 여권 의원들이 반민주적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법안이 처리되면 가장 큰 수혜자는 문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내년 5월10일 새 정권이 출범하면 문 대통령의 임기 중 권력남용ㆍ부패 문제가 대두될지 모른다. 이때 언론이 의혹을 보도하면 문 대통령은 ‘허위ㆍ조작’이라며 해당 언론사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걸핏하면 언론자유 운운하는 문 대통령은 언론자유를 압살하는 악법에 비겁하게 침묵하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쇄도하는 데도 문 대통령이 외면하는 건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보다 정권 비리 은폐가 먼저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이상일 단국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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