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4차 산업혁명과 거버넌스의 필요성

돌이켜보면 인류는 1~2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봉건제도의 붕괴와 해체 및 생산의 과잉에 따른 소비 모색을 위해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을 화두에 올려놓고 미래를 점치고 있는 3차 산업혁명은 정보와 상업행위가 인터넷ㆍ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혁신을 몸으로 체험하게 하며, 완전체에 가까운 디지털 사회를 구축토록 하고 있다. 인간의 역할과 영역을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인간 중심의 역사가 재편될 수 있음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세계각국도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 개발 및 생태계 구축을 위한 ‘거버넌스’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안을 들여다보면 공공(중앙, 지방정부) 주도의 계획과 분배, 실행 전반에 이르기까지 민간영역이 배제된 전근대적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만연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ㆍ허가에 따른 절차와 규제를 필두로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 그러하다.

OECD가 “한국은 고립된 혁신의 나라다. 국산화와 한국형에 집착하는 연구개발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며, 기술 상업화에 뒤떨어져 있다”고 한 말이 이를 반증한다. 이미 4차 산업혁명의 혁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에도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 것이다. 소리 없는 전쟁의 중심에 선 시점에서 공공과 민간 할 것 없이 우리 자신은 진중하게 묻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1차, 2차, 3차에 걸쳐 일어난 산업의 혁신적 변화가 위기에 처한 인류의 필연적 선택이자 돌파구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가올 미래의 준비는 공공과 민간의 거버넌스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최근 지방정부는 거버넌스를 통해 민간과 함께 나누고 완성하겠다는 한결같은 목소리를 힘줘 이야기한다. 그러나 속내는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개발의 주체가 예술문화에 있다면,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지역의 예술가 혹은 전문예술단체와의 거버넌스를 통한 발전 방안을 모색해야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공은 문화재단 등 특정 조직과의 파트너쉽 관계 등에 따라 편향된 지원과 운영을 하며 이를 도외시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백보 양보해 대중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구성원의 일원인 예술인들마저 외면하는 정책이라면 이는 다시 한번 재고(再考)해야 한다.

현대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산업으로 분류된 지 오래다. 예술도 그렇다, 살기 위해선 달란트가 필요하고 일자리 등 구성 요소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술에 있어 거버넌스의 재정립과 절박한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고, 이를 위해 공공주도방식은 배제돼야 한다. 넘어지고 깨지고 실패하더라도 일으켜 세우고 격려하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자 혁신이고 사회혁명이다. 국가 사회를 구축하는 공공기관과 시민사회의 긴밀한 거버넌스 구축 및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이영길 수원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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