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송림골,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학창시절 즐겨 읽은 김춘수 시인의 ‘꽃’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구에게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관심이요, 사랑이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나와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게 한다.

도시의 거리에도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 수 있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거리, 통영의 윤이상 거리, 군산의 근대유산을 고풍스럽게 살린 근대문화거리 등은 지역의 인물이나 자원을 공간에 투영하여 새로운 장소를 만든 것이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무형의 탱고를 상징화한 아르헨티나 보카 거리, 쇠퇴한 지역을 재생한 토론토의 양조장 거리, 폐 철로를 시민의 공원길로 재탄생시킨 뉴옥의 하이라인 모두 쇠퇴한 지역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여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곳이다. 이러한 공간은 현대 거리에서 느낄 수 없는 감성을 자아낸다. 필자에게 그 거리는 기억이 생생하고 깊은 감동을 주어 다시 가보고 싶다.

인천의 송림골도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거리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모두가 방문하고 싶은 명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오랜 세월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근대문화자산이 있어 근대문화거리로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서양의 문물이 유입되는 개항기 역사, 3ㆍ1운동 발상지의 역사 이야기를 곁들이면 풍성한 감성적 거리로 거듭날 수 있다. 붉은 벽돌의 고색창연한 근대 서양식 건물이 잘 드러나게 하고, 거리의 질감 있는 풍경을 연출해 낸다면 사랑받는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맛깔나는 해설이 더해진다면 방문하고 싶은 거리가 될 것이다.

거리를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공간감과 아울러 지역의 이야기 콘텐츠를 디지털화 해서 관광자원화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메타버스라는 플랫폼의 사이버 공간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동구 송림골의 또 다른 세상으로 사이버 영토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다. 개항의 시대로 들어가 그 시대의 삶을 살아볼 수 있도록 체험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쩌면 그때 그 시절의 도시 풍경이 더 활기차고 재미있었으리라. 송림골 근대문화거리가 물리적으로 새롭게 정비되고 사이버 공간으로 만들어진다면 주목받는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다.

송림골 근대문화거리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이며, 기독교 서양문명이 유입되어 우리의 전통문화와 융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시간적 연속선상에서 공간을 해석하고 그 역사가 우리 세대에게 시사하는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그 치열했던 격변의 시대에 온몸으로 살아낸 선조의 발자취를 그리면서 변화의 물결을 생각해 보자. 부디 송림골 근대문화의 거리가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해 우리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길 기대한다.

변병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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