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생적으로 남 탓하고 변명하기 적합하게 진화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자기 눈에 들보는 못 보면서 남 눈에 있는 작은 티끌은 보인다. 왜 그리 남에 것에 신경 쓰고 크게만 보이며 비교가 되는 걸까. 인간 본성이라 여기고 말면 편할지 몰라도 이건 분명히 아니다. 내가 잘못하면 크게 실수하는 것이고 상대에 피해가 되는 것이 분명하므로 짚고 넘어가고 반성해서 고쳐야 할 각자의 인격문제다.
왜 남의 떡만 커 보이는가. 내 떡은 항상 불만이고 맛 없어 보이는 이유는 뭘까.
햄릿들의 증상은 세 가지다. 뭐든 고르기가 버거워진 결정 장애 어른 아이 바로 나. 책임을 미루는 결정 회피자 그리하여 비교하며 남 탓하는 나. 현실에 안주하려는 무사안일주의자 나다. 독단과 자기 확신과 지적 오만함이 강렬한 빛을 비춰주는 그 길을 따라가면, 결국 어두운 숲이 나올 거라는 확신을 떨치기가 어렵다.
‘자존’이야말로 모든 미덕의 초석이다. 자신을 적절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구성원들과 협동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를 살며 자신이 주인공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대접을 원하게 되고 갑 질은 시작된다. 비교는 당연히 뒤따른다. 왜냐하면, 바로 나만 최고이니까. 나 먼저 바뀜은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어찌 된 노릇인지 늘 새로운 이야기며 실천하기 버겁다.
세상에 흔히 아는 이치는 눈먼 자 개천 탓에서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지팡이로 더듬더듬 길 가다 개천에 빠진 눈먼 자는 버럭, 왜 여기에 이런 게 있느냐며 화부터 냄이 십중팔구다. 진작에 자신 처지를 알아 항시 순리와 준비로 원하는 길을 찾는다면 늦더라도 목적지에 이르련만 말이다. 아무리 서툴러도 우선 실행하는 것 외에 ‘더 잘할 방법’은 없다.
내 탓, 남 덕으로 세상을 보면 어떨까. 내 눈이 잘못된 것이지 분명 남의 눈에는 이상이 없으니 나를 바로 보고 뒤 돌아보고, 확장과 축소. 축소와 확장의 연속성에서 나는 항상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없으면 귀신이거나 신앙인이 말하는 천국과 지옥에 있는 것이다. 너무 이기적인 발칙한 발상은 아니다. 은혜는 돌에 남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면 남 탓은 없어질 게 분명하다. 자, 지금 바로 나부터 실행하자.
김홍 한국중고배구연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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