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상하관계 등 경제 주체 ‘갑을관계’
민간부문 부패 청산 의식·제도개선 힘써야
‘청렴’하면 공직자를 먼저 떠올린다. 공직자의 주요 덕목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공직자에게 청렴이 강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공직자에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고 그만큼 거둬들이기도 쉬웠던 탓이다. 그래서 청렴의 덕목을 강조하기는 하였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청백리를 찾아 표창을 한 것은 당시 관리들 중에 청렴한 사람이 드물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상감께서 가세가 어려운 신하를 물산이 풍부한 고을 수령으로 보내서 요령껏 재산을 불리도록 한 일도 있었다.
서중자유복록(書中自有福祿)이란 말이 있다. 책 속에 복록이 저절로 있다는 뜻이다. 글을 읽어 벼슬을 하면 나라에서 복록을 내리니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를 하라는 말이다. 중국 송나라 진종 황제가 썼다는 권학문에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좋은 밭 사지 마라 책 속에 재물 있다. 큰 집 짓지 마라 책 속에 절로 있다. 중매쟁이 없다고 한탄 마라 책 속에 예쁜 색시가 들어 있다.”고 하면서 사나이가 평생의 뜻 이루고자 한다면 육경을 열심히 읽으라고 권고한다. 말이 권학문이지 내용은 치부론이자 출세론이다. 가난한 선비가 장원급제하여 부를 쌓고 집안을 일으켰다는 설화는 많이 있다. 그러나 벼슬아치가 녹봉만 받아 가지고는 딸린 식구 먹여 살리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읽어 출세한 사람 중에는 아직도 조선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급제하여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자신들의 권력은 공정한 시험을 치러서 얻은 것이니 지금 누리는 혜택이나 대우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전관예우라는 이름으로 전관비리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청렴의 상대어는 부패다. 특히 뇌물 범죄를 부패라고 하는데 문제는 그것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 인식에 있다. 이른바 김영란법이 나왔을 때 강력히 반대하였던 부류들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라. 결과적으로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의 관행적인 금품수수 문화와 부패를 인식하는 태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유사 이래 3대 난리 중 하나라고 했을까? 임진왜란, 6·25동란에 이은 또 하나의 난리가 김영란(亂)이라는 것이다. 청렴 사회는 개인의 의식 개선만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다. 제도 개선이 함께 할 때 그 효과를 앞당길 수 있다. 김영란법은 제도 개선의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혹자는 김영란법이 우리 사회의 따뜻한 인간관계마저 단절시키는 악법이라고도 하지만 그 따뜻함이 권력관계의 우위에 있는 자들만의 생각이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청렴이 공직자들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국가권력이 이미 경제 권력으로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공직자들만 청렴하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깨끗해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그리고 직장 내 상하관계 등 경제 주체의 갑을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패 고리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우리 국민이 느끼는 청렴 체감지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공직사회의 부패 청산을 넘어 민간 부문의 부패 청산을 위한 의식과 제도 개선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이용주 평택교육지원청 교육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