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제도에는 허점이 있다. 국민적 공분을 산 론스타의 세금 회피가 이를 악용한 사례다. 2007년 국세청은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 매각으로 벌어들인 차익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했으나 대법원은 “외국법인으로서 국내에 고정사업장을 가지고 있지 않아 법인세 부과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고정사업장은 지점, 사무소 등 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현행 국제 조세제도상 국내 고정사업장이 없는 외국법인은 법인세 납부 의무가 없다. 론스타는 국내에서 다양한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었음에도 조세 회피처를 경유함으로써 세금을 교묘히 피해갔다.
조세제도는 간혹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금융혁신으로 출현한 신금융상품에 대한 과세근거는 한발 늦게 마련된다. 2002년 출시된 엔화스왑예금은 고객이 원화를 맡기면 엔화로 바꿨다가 선물환거래를 통해 만기시 엔화를 되팔아 원화로 돌려주는 상품이다. 국세청은 선물환에서 발생하는 소득도 이자소득으로 간주해 과세처분을 내렸으나 대법원은 동 소득은 외환매매이익으로 과세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이후 세무당국은 이자소득 상품(예금)과 파생상품(선물환)이 결합해 하나의 금융상품으로 운용되는 경우 모든 소득을 이자소득으로 간주하도록 세법을 개정했다.
일명 ‘구글세’로도 불리는 디지털세는 조세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시대 흐름을 따라가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 경제는 전통산업과는 달리 고정사업장 없이 수익실현이 가능하고 무형자산 의존도가 높다. 아마존 등 온라인 유통시장,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사업, 넷플릭스ㆍ우버 등 구독ㆍ공유 비즈니스의 경우 사실상 고정사업장이 무의미하다.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무형자산(지적재산권)을 아일랜드 등 저세율국으로 이전한 후 시장소재지에서 저세율국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최소화했다. 조세회피의 의도는 다분하나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으니 ‘합법적 탈세’라 할 만하다. 디지털세는 바로 특정 국가 내 고정사업장 유무와 관계없이 글로벌 IT 기업이 매출을 발생시킬 경우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이다.
지난 7월 주요 20개국은 베네치아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서 디지털세 부과를 포함한 조세 개혁안에 합의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연결기준 매출액 200억 유로, 이익률 10% 이상인 다국적 기업들이 과세대상이다. 당초에는 디지털 서비스 산업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이후 소비자 대상기업까지 확장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도 디지털세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세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 주요 글로벌 IT 기업이 소재한 미국, 기업 유치 감소를 우려하는 아일랜드ㆍ네덜란드 등 각국의 셈법이 복잡하다. 오는 10월 G20 정상회의에서 최종 합의가 이뤄질 디지털세 세부방안을 주목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성경 한국은행 경기본부 경제조사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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