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드라마에서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코로나 19는 인류 전체의 삶을 위협하고 서민 경제는 바닥을 치고 이러한 와중에 부동산 값은 폭등해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절이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면서 최근에 발의되거나 제정되는 몇몇 법안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5·18 왜곡 처벌법을 보며 느끼는 소회는 참으로 묘한 것이었다. 필자의 세대에게 5·18은 언제나 원죄의 역사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부인해 본 적이 없다. 5·18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 망발이 오늘날의 주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을 법으로 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듣기 싫은 일부의 목소리 때문에 법을 만든다는 것은 오히려 역사의 진실을 틀 안으로 가두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역사왜곡방지법이나 위안부왜곡처벌법 발의도 같은 맥락에 서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바를 믿지 못하고 법률로 정하려는 것은 그 왜곡이 심하기 때문이기도 할 터이지만 궁극적으로 국민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논어를 꺼내 든다.
‘인도하기를 법으로써 하고 가지런히 하기를 형벌로써 하면 백성은 형벌을 면하려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을 것이다.(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법으로써 국민의 삶을 재단한다면 법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국민에게 어떠한 도덕과 염치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지런한 사회가 될지 몰라도 결국 자율성이 거세된 타율성의 사회로 가는 길이 될 터이다. 옛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겠지만 열린 사회로 가려면 법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도 이와 무관치만은 않을 것이다.
우대식 시인ㆍ경기민예총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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