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기일을 맞아 성묘를 다녀왔다. 참 좋은 가을 하늘 아래서 회한에 잠겼다. 우리네 부모들이 다 그렇지만 특별히 우리 어머니는 일찍이 혼자되셔서 늦둥이 어린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시국사범으로 감옥에 가서 열린 첫 재판 날이 어머니 회갑 날이었다. 재판 끝나고 교도소로 면회 오셨는데 고운 한복을 입으신 것을 보고서야 회갑이신 것을 알게 됐다. 불효막심했다.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르는 가운데 문득 우리 어머니는 고생만 한 어머니가 아니라 늘 배우시는 분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불공드리러 절에 가고 염불 올리는 것에서 시작해서 화두를 들고 참선의 길로 나아가셨다. 고승 대덕의 가르침을 녹음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으시며 늘 배우고 깨닫고자 노력하셨다. 어머니는 자랑스러운 평생학습자이셨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묘지 근처에서 살다가 자녀 교육에 좋지 않아 시장으로 옮겼는데 이도 마땅치 않아 서당 근처로 옮겨 아이를 잘 가르쳤다는 이야기다.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우리나라에는 한석봉 어머니 이야기도 전해진다. 글씨 공부를 떠난 아들이 공부 10년 약조를 어기고 3년 만에 돌아오니 석봉의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아들은 글씨를 쓰게 하고 자신은 떡을 썰었다. 한석봉은 글씨를 제대로 못 썼는데 어머니는 떡을 가지런하게 썰었다. 석봉은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고 공부에 전념해 명필이 됐다는 이야기다.
다들 훌륭한 어머니에 대한 옛이야기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석봉 어머니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맹모산천지교는 좋은 학군을 찾아다니는 수준이지만 한석봉의 어머니는 자신이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녀에게 교육환경도 중요하지만 어머니가 보여준 삶의 자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어머니는 ‘배움은 이미 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學而不可以已)’는 순자(荀子)의 금언을 실천하신 분이었다. 어머니는 한석봉의 어머니 같은 분이었지만 자식은 한석봉이 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성묘에서 돌아오면서 배움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오늘 집중해서 실천하는 것임을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성인 학습자들의 학습 의지를 북돋고 지원하는 사회체제는 어떻게 만들어갈지 고민한다.
김제선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