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경기교육] 청렴 조직문화와 인권감수성

약자와 공감·연대하고 권력에 저항, 작은 말 한마디에도 배려와 존중을

두 마리의 소에 멍에를 씌워 밭 가는 것을 보고, 황희 정승이 물었다. “두 소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농부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밭 갈기를 그치고 가까이 와서야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이 소가 낫습니다”, “왜 귀에 대고 말하는가?” 물으니, “비록 가축이지만, 그 마음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요. 이 소가 나으면 저 소는 그만 못한 것이니 소에게 이를 듣게 하면 어찌 불평의 마음이 없겠소?” 농부가 말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구성원들이 상처받을 수 있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불언장단(不言長短)의 덕목을 강조한 이야기이다. 전장(戰場)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요인이 최신 무기가 아니라 군인들의 사기라고 할 정도이며 그래서 집단 내지 조직의 분위기는 성과 지향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참여와 소통, 배려와 존중의 건강하고 민주적인 조직을 위해 학교는 민주주의 지수를 통해 그 정도를 가늠하며 구성원들의 인권감수성이 높을 때 민주주의 지수도 당연히 높게 나타난다. 사전적 의미의 감수성(感受性)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라고 표현한다. 감수성은 외부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의식 밑바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 노력 끝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시나브로 드러나는 것이 개인과 조직의 감수성이다.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은 개인이나 작은 단위 조직의 문화가 모여 표현되는 것이다.

최근 무릎 꿇고 우산을 받쳐주는 황제의전에 대한 논란이 시끄럽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를 다루는 법무부의 인권감수성이 저것밖에 안 되느냐고 안타까워하며 분노하는 목소리도 있고 우산을 받쳐든 직원을 유령인간쯤으로 취급해 뒤로 가라고 더 낮추라고 계속된 주문을 한 기자 탓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주의가 우리들의 교과서나 연구실에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물론 촛불이나 구호 가득한 피켓을 들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廣場)에서만 존재해서도 안 된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는 정치제도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따듯한 마음에서, 가난하고 아픈 약자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며 불의에 분노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실천으로 존재해야 한다.

황제의전 논란이 야기된 현장에는 법무부 직원과 기자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특종 보도를 통해 기자로서의 명예를 높이는 것보다 법무부 고위공직자와 조직의 인권감수성을 질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흥건하게 물이 고인 아스팔트 위에 무릎 꿇고 우산을 펼쳐든 누군가의 아들이고, 삼촌이고 형이었을 공무원에게 일어나라고 누군가는 이야기 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를 질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떡했을지 나의 인권감수성을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속한 학교, 내가 일하는 직장의 인권감수성은 어느 정도인지 성찰하는 것이 법무부와 내가 일하는 조직을 모든 구성원들이 존중받는 건강하고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튼실한 조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성찰하는 노력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길 아닐까?

이범희 성남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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