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보았다’ 맥아더 장군이 인용한 플라톤의 금언이다. 그의 말대로 세상은 여전히 끝없는 전쟁과 분쟁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제76차 UN 총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북한의 관심 있는 반응이 주목되지만, 국민의 여론과 정치인들의 정치적 수사(修辭)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일치된 대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북핵 문제 해결이었다. 그럼에도 남북 간 서로 다른 정치적 상황과 상호 불신은 대화보다는 긴장과 대립으로 표류했다. 대외적으로도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지형을 바꿀 수 있는 주요한 정책결정은 주변 열강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이다.
더구나 바이든 시대 외교는 동맹을 중시한다고 하지만, 더욱 현실적이고 단호한 상황이다. 최근 미 하원에 이어 상원의 2022회계 연도 국방수권법안(NDAA, 미 국방예산의 규모ㆍ용처 등을 정한 법안)에서도 주한미군 감축을 제한하는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말하는 ‘강한 미국’의 청사진은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에 두는‘아메리카 퍼스트’이다. ‘세계 경찰’의 지위에서 내려와 자국 국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돌보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변화된 상황은 한국에 새로운 차원의 전략과 전술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지향의 안보체제는 어떻게 가야 할까? 몇 가지 기준이 전제돼야 한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주요 안보 현안이 평화의 관점에서 다뤄져야지, 파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 발의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만으로도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근본적으로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적으로는 남북 간 평화문제 해결은 한국의 국익이 아닌 관련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한미 동맹과 한중관계도 양자택일이라는 이차원적 선택이 아니라, 동북아의 공존과 공영을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측면에서 선택해야 하는 과제이다. 종전선언으로 북한의 위협을 넘더라도 주변국들의 군비경쟁은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안보적 위협으로 대두될 수 있다. 외교와 협상도 중요하지만, 국제안보적 대응력은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강(自强)이다. 물론 종전이라는 역사의 연장선에 서 있는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자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전쟁 종식과 안보력 강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고민으로 보인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분명한 목표이며 열망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힘의 축적 없는 평화는 허상이며, 언제든지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은 지난 28일에도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 했다고 밝혔다. 감성으로 평화를 강조할 수 있지만, 군은 냉혹한 힘으로 평화를 지켜내야 하는 이유이다. 이는 국방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종전선언은 현실적 상황을 감안한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떠한 경로를 통해 어떻게 발생하고 그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가를 직시하는 자세도 그만큼 필요한 것이다.
결국 전쟁의 종식은 쥐고 있는 주먹을 펴야 악수할 수 있다. 안보는 혼자 가기보다는 양자 및 다국적 상황에 의해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종전선언의 의지가 추상과 공론(空論)의 영역에서 실종되지 않고, 국가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한 ‘전쟁의 대비’와 동시에 70년간 지속하여온 전쟁의 공포와 상흔을 치유해 나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 회장ㆍ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