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나의 간호 인생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직업을 선택하는 청년기에 내가 택한 길은 너무 잘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래 희망이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칸에 간호사, 선생님이라고 늘 적어 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에서도 보건의료 계통이 적합하다고 나왔다. 그러나 막상 간호대학을 다니면서는 과연 이 길이 내가 평생 가야 할 길인가 하는 갈등도 많았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좋은 학우들과 떠밀리듯 시간은 흘렀다. 그래도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이팅게일 선서식이다. 친구, 가족 등 많은 사람 앞에서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한 선서식은 잊을 수가 없었고, 그날의 촛불 의식은 내 마음속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간호사 면허증을 가지고 바로 병원에 입사하고 선배들과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학생 시절의 임상실습보다 훨씬 사명감과 책임감이 강해지고 보람도 많았다. 오늘은 어떤 환자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면서 근무를 나갔다. 근무한 지 얼마 안 된 초년병 시절에 아버님이 소화가 안 돼서 집 가까운 병원에서 위장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데도 좋아지지 않아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서 내가 일하는 병원에 오셨다. 나는 일로 바빠서 함께 있어 주지도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아버지는 딸이 제일 잘난 줄 알면서 간호사인 것을 대견해하고 딸이 일하는 병동에 입원하셔서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후 병원 일을 하면서 대학원에 다녀 일과 학업의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바쁘지만, 의미 있게 보냈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겨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교수인지 학생인지 구별이 안 되는 시절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좀 더 성숙해 보이려고 노력하고, 수많은 제자가 나를 스승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간호는 3H다.’라고 정의한다. 3H는 Head, Heart, Hand로 머리는 전문적인 지식을, 심장은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손은 섬세하고 기술적인 능력으로 3H 간호를 하라고 가르치면서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강의, 연구, 봉사하는 교수로서 학과일, 학교일, 학회일 등을 하면서 내 인생의 아름다운 시간을 가졌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의 꿈인 간호사와 선생님 둘 다를 잘 이룬 것 같다.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퇴직하고 어머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폐암으로 점점 숨이 차오면서 분명하게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 코로나 시국이라 보호자가 1명만 병실에 있어야 해서 산소치료와 통증을 조절하는 어머니 곁에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간호사인 내가 함께 있는 걸 제일 편안해하셨고, 퇴직하여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간호학생을 가르치며 4학년 2학기 마지막 강의에서 “높은 가을 하늘 아래 수많은 코스모스가 있지만, 이 꽃들은 자세히 보면 색깔, 모양, 크기 등이 다르다. 그렇지만 코스모스를 보고 국화라고 부르진 않는다. 일란성으로 태어난 사람도 다르고 이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다 다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간호의 대상자는 인간이기에 간호의 출발선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좋은 간호사가 될 수 있다.”라고 학생들에게 부탁의 말을 남겼다.

간호사로 산 지난 40년을 되돌아볼 때 나는 간호사여서 참 좋다. 간호학과를 가고자 하는 예비 간호학생, 간호학을 공부하는 예비 간호사에게 자신의 진로를 정말 잘 선택했다고 응원한다. 간호학과를 지원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늦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간호사를 꿈꾸는 용기를 주고 싶고, 더 많은 사람이 간호사가 되는 걸 꿈 꾸길 바란다.

전화연 경기도간호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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