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유영기 명인
아들 유세현 관장과 화살 만들기 시연 눈길
손자·손녀에게 ‘장인정신’ 대대손손 이어져
엊그제 새해가 시작된 것 같은데 벌써 시월이다. 옛사람들이 남긴 속담처럼 “쏜살같은 세월”이다. 화살이 1초에 70m를 날아간다니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을 비유하는데 썩 어울리는 표현이다.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 세월이라지만,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은 법이다. 그래서 사연 많은 인생살이를 “활등처럼 굽었다”고 했던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고단한 인생살이를 활과 화살에 비유했을 정도로 한국인에게 활과 화살은 친숙한 물건이다. 지난 15일, 파주 헤이리에 있는 영집궁시박물관(관장 유세현)에서 ‘국가무형문화재 47호 궁시장’ 유영기 명인(名人)이 직접 화살을 만드는 과정을 시연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2001년부터 20년째 벌이고 있는 ‘2021 영집전’이다.
■ 6대째 잇고 있는 전통의 맥박
87세의 고령이지만 유영기 명인은 섬세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대잡이통에 넣어 뜨거워진 대나무를 졸대에 끼워 바루기를 반복한다. 이번에는 전승 조교이자 교육사인 아들 유세현 관장이 같은 작업을 시연한다. 숯불을 피운 대잡이통에 살대를 넣고 불에 달구어진 대를 졸대로 곧게 펴는 이 작업을 ‘졸을 본다’고 한다. 대나무 마디를 갈아 없애고 껍질을 벗겨 내고, 송곳으로 찔러 공기를 빼낸다. 활시위가 걸리는 오늬를 파고, 촉을 끼우기 위해 살대의 끝을 깎은 다음 오늬를 끼우고 부레풀을 묻힌 쇠심줄로 묶는다. 부레풀을 묻힌 깃을 붙이고, 촉을 끼운 뒤 다시 졸을 본다. 화살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본 다음에야 비로소 허리를 편다. 드디어 화살이 완성된 것이다.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매년 여는 공개행사이지만, 두 사람은 시작부터 끝까지 무려 3시간 동안 작업에 열중했다. 옛날부터 활을 만드는 장인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화살은 활 이상으로 제작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기법도 정교하다. 사대에서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왜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이 따로 존재하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작업을 보조하던 손자 유호상은 물론 손녀 유소정도 가업을 잇기 위해 과정을 밟고 있는 ‘전수자’라니 놀랍다.
궁시장 유영기 선생의 고향은 파주와 가까운 장단면으로 현재 북한 땅이다. “예천은 활, 장단은 화살”이란 옛말이 있을 정도로 화살로 유명한 고장이다. 유영기 선생의 부친은 한국전쟁 때 집문서를 두고 살 만드는 도구와 부레풀만 챙겨 피난할 정도로 장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부친의 장인정신을 오롯이 이어받은 유영기 명인은 전통 화살 제작에 몰두했을 뿐 아니라 단절된 활 관련 유물을 복원하는 일에도 정성을 쏟았다. 1960년에 국방사학회의 요청을 받아 신기전을 복원하여 현충사에 전시할 정도로 일찍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전승이 아주 끊어진 편전 발사법의 복원했으며, 1998년 건군 50주년 기념축제에서는 쇠뇌와 효시를 제작해 육군사관학교에서 실연을 지도하기도 했다. 한국의 전통 궁시의 역사와 실기 및 제작법을 정리한 ‘한국의 죽전’(1977)과 ‘우리나라의 궁도’(1991), ‘궁시장 교재’(2003) 같은 책도 출판했다. 이러한 공로로 유영기 명인은 ‘2017년 자랑스러운 경기도 박물관인상 대상’을 수상하고, 2020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한다.
■ 화살에 깃든 장인의 숨결
유세현 관장의 안내를 받아 2021년 특별전 ‘명궁 심재관전’이 열리고 있는 박물관에 들어선다. 명궁은 ‘활을 잘 쏘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대한궁도협회의 규정에 따르면 5단 이상이라야 명궁이라 칭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45시를 쏘아 31시 이상을 과녁에 맞출 수 있는 실력이지요. 그러나 활 잘 쏘는 실력만으로 명궁이 되지 못합니다. 활을 쏘는 자세인 궁체와 평상시의 생활태도 등 여러 가지를 심의한 이후에 명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심재관은 1986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9단 명궁입니다. 흥미롭게도 심 명궁은 가족 사랑이 지극했던 분이라고 합니다. ‘활쏘기에 빠져 살던 궁사가 세상을 떠나면 제일 먼저 활과 화살이 아궁이에 들어간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인데 특별하신 분이죠.” 명궁의 손때가 묻어 있는 흑각궁과 화살을 살펴본다. 굵은 대나무에 용을 조각한 전통, 활쏘기에 필요한 물건을 넣는 복주머니 모양의 궁낭, 유엽전 촉을 끼우고 빼거나 바로잡을 때 사용하는 촉도리가 여럿이다. 그의 이름을 새긴 낡은 궁대, 나귀를 타고 눈 쌓인 겨울 산으로 사냥을 떠나는 궁사가 그려진 동양화에는 ‘황학정 심사범을 위해 동운이 그렸다’는 글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선물한 글씨와 활 소기 성적을 기록한 시지, 상장이 가득하다. 9단을 받고 찍은 기념사진과 활을 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비롯해 40~50년 전 활터의 풍경을 살필 수 있는 색 바랜 흑백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 활과 화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다
상설 전시실에서 화살이 종류가 너무나 다양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새삼 놀란다. 화살의 촉도 참 다양하다. 끝이 V자 모양으로 벌어진 것, 도끼날처럼 생긴 것, 나뭇잎을 닮은 것, 방망이처럼 생긴 것, 도끼날 양쪽에 갈고리가 달린 것도 있고, 기호로 쓰이는 화살표 모양도 있다. 끝에 화약을 단 화살, 나무 혹은 뼈에 구멍을 낸 ‘명적’(鳴鏑)이란 화살도 있다.
조선시대에 여진족은 명적이 날아오면 귀신이 우는소리라 하여 아주 두려워했다. ‘효시’라는 말은 공격 개시를 알리던 신호화살을 말한다. 화살의 머리 부분에 호루라기처럼 생긴 작은소리통을 달아 쏘면 공기마찰로 ‘삐익’ 큰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뿔거리 화살은 동물을 사냥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뼈를 부술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엔 깃을 살핀다. 지금 만드는 화살은 수꿩 장끼의 꼬리 깃을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는 두루미나 독수리, 매의 깃도 사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싸리나 버드나무로 만든 화살도 눈에 띈다. “대나무가 자라지 않는 북쪽에는 싸리나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해서 화살을 만들었지요. 물론 삼국이 경쟁하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표적을 쏠 때 화살 깃이 큰 것이 좋을까 작은 것이 좋을까? 얼핏 생각하면 짧은 것을 사용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진을 달리며 동개라는 작은 활을 사용했던 기병들은 큰 깃을 단 대우전(大羽箭)을 주로 사용했다.
태조 이성계는 촉이 배처럼 생긴 화살을 즐겨 쏘았는데, 1380년 지리산까지 침투한 ‘운봉전투’에서 왜구 1만여명을 이끈 용감무쌍한 왜구 장수 ‘아지발도’는 아무리 쏘아 맞혀도 소용이 없다. 갑주를 입고 얼굴에 쇠로 된 가면까지 쓴 사실을 파악한 이성계가 아지발도의 투구를 겨냥해 화살을 날렸다. 투구가 땅에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의형제 이지란이 아지발도의 이마를 쏘았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고려의 영웅으로 떠오른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위해 출전하다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한다.
■ 살장이 아들이 전통을 잇다
궁시장 유영기 명인의 뒤를 잇는 유세현 관장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실험정신이 투철한 장인이다. 1983년부터 부친으로부터 가업을 계승하여 2006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전수교육조교로 활동하고 있는 유 관장은 2012년부터 매년 꾸준하게 ‘살장이전’을 열고 있다. 살장이전은 유세현 관장의 실험정신과 장인정신이 오롯이 녹아있다.
특별전의 이름을 살펴만 봐도 영집궁시박물관이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를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활, 동서양의 만남’ ‘세계 전통 활’ ‘화살 어제와 오늘’ ‘신기전-달리는 불에서 귀신들린 화살까지’ ‘대나무에 불어넣은 숨결’ ‘활! 보다 그리고 느끼다’ ‘휘파람을 부는 화살’ ‘전통활과 화살의 이해’ ‘살촉에게 묻다’ ‘체험을 통한 국궁 문화’ ‘우리의 활 각궁’ ‘최종병기 활’ ‘전통활쏘기 편사’ ‘옛 그림으로 보는 활 이야기’ 등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 활과 화살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살폈다. 삼대가 한마음으로 세계 최고의 궁시박물관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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