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약속(約束)은 사회적 책무이자 의무

약속(約束)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누군가가 무언가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미리 정하는 행위를 말하며, 딱히 손가락을 걸지 않아도, 문서로 인증하지 않아도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약속이라 한다. 또한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의 사회학과 사회에서의 약속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사상적 인상(ideological impression)이나 책무(commitment)이자, 번영의 답례로써 우리가 사회에 행하는 책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약속(約束)과 관련해서 영국에는 이런 내용의 동화가 있다. 길을 가던 담요 장사가 당나귀를 만나 금 두 냥을 줄테니 장까지 짐을 실어다 줄 것을 부탁하고 당나귀는 이를 수락한다. 이후 당나귀는 까마귀에게 등에 파리를 쫓아주는 조건으로 금 석 냥을, 까마귀는 참새에게 먹이를 잡아주는 조건으로 금 네 냥을 제안하고 각자는 본분에 충실한다. 장이 시작되자 담요를 본 참새가 장사꾼에게 금 네 냥에 팔 것을 약속 받고 까마귀에게 약속한 금 네 냥을 달라고 하였으나 까마귀는 석 냥만 주겠다는 일방 통고 이후 당나귀에게 금 석 냥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당나귀 또한 석 냥은 너무 많다며 금 두 냥만 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장사꾼에게 금 두 냥을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장사꾼은 참새에게 금 네 냥을 요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주장하다가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판결은 서로 간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책임을 물어 장사꾼은 감옥 행과 동시에 담요를 몰수당하고 당나귀는 몽둥이 열대를, 까마귀와 참새는 꽁지 털을 다 뽑아 버리는 형을 내렸다고 한다. 장사꾼은 참새를 탓하고, 참새는 까마귀, 까마귀는 당나귀, 당나귀는 신음을 하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장사꾼을 원망하였다고 한다. 서로가 지킬 의향도 없이 무심코 함부로 한 약속이 사회 저변에 가져올 파장과 불신에 대한 꼬집음이 가슴에 와 닫는 동화다.

작게는 개인 간의 약속에서 크게는 사회나 국가 간의 약속에 이르기까지 현실 사회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약속을 통해 서로 간의 관계를 맺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이를 통해 자기 발전과 자기책무를 배운다. 그래서 개인과의 약속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구성원 간의 약속은 그 무게가 더욱 무겁다. 결국 주어진 위치와 자리에서 지키는 다양한 약속들이 모여서 개인과 국가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건너야 한다는 약속이 없다면, 남의 물건에 손대면 안된다는 약속이 없다면 그 혼란의 양상은 상상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더욱이 북한과 같이 국가 간의 이익이 달린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무역보복과 전쟁 등 그 사태의 심각성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 왔다.

머지않아 지방선거와 대선 등 선거철이 도래한다. 수없이 많은 공약이 말과 언어의 공해로 난무할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각 후보들은 지역 예술문화 발전을 위해 크고 작은 약속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소수의 지자체를 제외 하고는 그 임기가 다해감에도 약속의 대부분 지켜지지 않고 식언(食言)으로 전락 했다. 약속이란 미래를 말하는 것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미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고 꿈을 꿀 수 없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약속이 우리가 속한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협력하고 상생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실행이며 궁극의 가치인 점을 감안 한다면, 혹여 그 이행이 미치지 못한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돌아보며 열매 맺게 하는 데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할 때이다. 약속은 의무이자 사회적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영길 수원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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