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케냐의 드넓은 초원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생물을 관찰한 것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색다른 경험이다. 광활한 초원에 그토록 많은 야생동물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풍경은 매우 신비로웠고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멀리 눈 덮인 킬리만자로 산이 장엄하게 서 있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케냐에서 가장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야생동물 보호구역인 마사이마라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있다. 수천마리의 야생동물이 먹을 풀이 가득한 비옥한 토지를 찾아 떼를 지어 마사이마라 국립보호구역과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를 오가며 이동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마사이마라는 킬리만자로 산을 배경으로 광활한 초원지대에 야생동물 600종이 서식하고 있는 세계적인 야생의 보고다. 쉬지 않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가녀린 임팔라, 가족 사랑이 넘치는 코끼리, 키 큰 나무 사이에 숨어 사람을 경계하는 기린 가족, 멋있는 뿔을 자랑하는 누, 까맣고 하얀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흑갈색 근육의 버펄로 등의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하지만 마사이마라는 안타깝게도 더 이상 동물들의 세상이 아니다. 매일 수백 대의 관광용 사륜구동 사파리 트럭이 다니는 시끄러운 관광지다. 안내자들은 서로 무전을 통해 동물들의 위치를 파악해, 사파리 관광객들이 만족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가까이 차를 몰고 다닌다. 서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관광객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사자가 나타나면 수많은 차량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벌 때처럼 몰려든다. 순식간에 사자 주위에 수많은 트럭이 둥글게 대열을 형성한다. 그 대열은 마치 동물원의 우리와 같았다. 그 우리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사자가족의 시달림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자욱한 흙먼지와 카메라 셔터 소리, 사람들의 환호소리는 사자가족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가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멸절시켰으면 인간을 생태계의 파괴자라고 했을까. 인간의 관광행태가 마사이마라의 사자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영화 ‘라이온킹’의 배경 무대인 마사이마라, 그 왕국에 위협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비가 오지 않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초원이 말라가고 있다. 풀을 뜯어먹고 살아가는 초식동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초원의 초지가 말라가면서 동물들이 풀이 있는 산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인이 애써 넓은 초원에 물을 뿌려보지만 역부족이다.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마사이마라의 자연생태계를 지켜내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다. 야생동물이 존재함으로 얻게 되는 가치를 재인식하여 동물의 삶을 위협하는 지금의 야만적 관광을 지양하고 야생동물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자연친화적 관광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변병설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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