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남이 아닌 내가 보이는 길

길을 걸으면 자동차나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보다 눈에 들어오는 게 많다. 산책의 즐거움이 걷기 명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남이 보이고, 걸어가면 내가 보인다”는 어느 도보 예찬론자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프랑스에서 ‘플럼빌리지’라는 수행공간을 운영하는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일상 속에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모든 발걸음마다 평화’라는 책을 통해 알려준다. 스님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잊고 지내는 마음 챙김을 지금, 여기에서 찾으라”고 조언한다. 보행자를 걷기 편하게 하는 도시는 품격 높은 쾌적함을 안겨준다. 이런 도심엔 역사성과 장소성이 살아 있는 거리가 곳곳에 뻗어 있고, 과거의 기억과 흔적을 간직한 건축물이 친숙함을 더해 준다.

근대건축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인천에도 인상 깊은 거리와 건물이 상당하나 아직 그 가치를 제대로 발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끈 미국 보스톤의 프리덤트레일 4km 거리에 독립선언문 낭독 광장, 독립영웅들의 공동묘지, 독립전쟁 기념탑 등 ‘아메리칸 퍼스트’ 시설이 몰려 있듯 ‘코리안 퍼스트’가 인천 개항장문화지구에 즐비하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 ‘양키두들’이란 음악이 울려 퍼진 화도진, 자장면 탄생지 청관거리, 선교사 아펜젤러 부부가 세운 국내 첫 개신교회인 내리교회, 최초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 국내 최초 철도인 경인철도 착공지, 국내 최초 극장 협률사(현 애관극장) 등이다. 또 청일조계지 계단, 여선교사 합숙소, 제물포구락부 등 역사문화자산이 무궁무진하다.

인천에서 활동하는 젊은 뮤지션들이 구한말~일제강점기 인천에서 불리던 제물포애국가, 경인철도가 등 100곡가량의 옛 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 1926년 개항장에서 유행한 ‘인천 아리랑’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제물포, 더 재즈 예그리나’가 송도 트라이보울 무대에 올라 감동을 주었다. 배우들이 부른 ‘다소니 응수, 에바는 슬아 해나 아리아’(응수가 사랑하는 사람, 에바는 슬기롭고 아름다운 요정)라는 해석 안 되는 순우리말 가사가 진한 여운을 주었다. 대중음악의 시발지인 인천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근대문화가 넘쳐나는 개항장거리 인근엔 산업유산도 가득하다. 시민들이 다음달 24일까지 한 달간 일제강점기부터 운영되던 도쿄바우라전기, 조선기계제작소, 동일방직, 삼화제분 공장을 둘러보는 ‘노동자의 길’을 탐방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길이 평소에도 친숙하게 다닐 수 있는 일상의 공간으로 자리 잡아야 인천에 활기와 생기가 넘쳐날 것이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