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내비게이션은 전국의 도로망과 교통정보를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모든 길의 정보가 내비게이션에 담겨 있다. 그러면 조선시대 길에 대한 정보는 어디서 얻을 수 있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길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것이 지도인데, 조선시대 지도는 군사 정보로 치부돼 보안이 심했다. 그런 이유로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기도 했다. 더욱이 수도 한양을 벗어나면 길에 대한 정보는 더욱 부실해진다.
우리 역사에서 백성을 위한 지리 정보의 필요성을 자각한 인물이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다. 백성이 가장 필요로 한 정보는 길을 중심으로 한 교통 정보다. 신경준은 조선 팔도의 모든 길에 대한 정보를 ‘도로고(道路考)’속에 담았다.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서문을 쓰면서 “사람이란 머물기도 하고 다니기도 하는데, 집은 머무는 곳이고 길은 다니는 곳이다”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 같지만 신경준은 집보다 길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집은 나 혼자만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길은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병폐도 생긴다. 누구나 자기 집은 가꾸지만 주인이 없는 길은 신경을 안 쓴다. 신경준은 길은 주인이 없지만, 그 위를 다니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했다. 모두가 길의 주인이다. 공공재로서 길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경준은 “인(仁)은 편안한 집이고, 의(義)는 바른 길이다”라는 맹자의 말을 빗대어 국가를 다스리는데 치도(治道), 즉 도로의 개선과 정비가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신경준이 치도로서 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다산 정약용은 상심낙사(賞心樂事)로써 길의 중요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실학박물관이 위치한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는 신경준이 제시한 여섯 개의 대로(大路) 가운데 제3로인 평해로에 해당된다. 평해로는 남양주 삼패에서 두물머리와 양평을 지나 강원도 원주와 평해로 이어지는 구간으로 이 길은 다산 정약용이 육로와 배를 이용해 다니던 상심낙사의 아름다운 길이다.
상심낙사는 ‘마음으로 감상하는 즐거운 일’이란 뜻으로 소동파가 ‘마음으로 감상하는 16가지 아름다운 경치’라는 뜻의 ‘상심십육사 賞心十六事’에서 비롯됐다. 다산 정약용은 상심낙사의 운치를 가진 곳으로 자신의 고향집이 있는 두물머리 일대와 서종을 꼽았다. 다산은 ‘내 옛 집은 비록 재물은 넉넉지 않으나 산수의 운치만큼은 마음으로 감상하고 즐길만한 곳’이라 여겼다. 다산이 평소 이 지역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가을, 상심낙사의 정취가 가득 담긴 평해길을 걸어보시길 권한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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