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8. 양평 '구하우스미술관'

2016년 개관… 유명 건축가 조민석이 직접 설계
10개의 공간에 회화·설치 미술·조각·사진 등
구정순 관장 수집 현대미술 작품 400여점 전시
현재 시대 통찰 ‘데미안 허스트-새로운 종교’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명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Pictures at on Exhibition’. 다각도와 다양한 시간에 촬영된 수백장의 사진을 한장으로 만든 작품이다. 윤원규기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만나는 북한강을 따라 펼쳐지는 늦가을 풍경이 황홀하다. 양수역에서 자전거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자리한 구하우스미술관(KooHouseMuseum, 관장 구정순). 짐작하듯 이 독특한 이름은 설립자인 구정순 관장의 성과 집이란 단어를 조합한 것이다. 구하우스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을 표방하며 2016년에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구하우스는 미술관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전복하여 미술관을 ‘집’처럼 만들었다. 미술관을 설계한 이는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건축가 조민석이다. 건물에는 설립자의 이념과 지향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가정집 분위기를 연출한 전시실은 서재, 거실, 침실, 복도, 다락 등으로 이름 붙인 10개의 공간에 회화를 비롯해 설치 미술, 조각, 영상과 사진, 빈티지 가구까지 현대미술 작품 4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집 안을 돌아다니는 기분으로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라는 주인의 따뜻한 마음이 읽힌다.

■시대를 통찰하는 예술의 힘

최현진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작품 관람을 시작한다. 10개나 되어 헷갈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전시실에는 큼직한 아라비아 숫자가 붙어 있다.

2번 전시장에서 만난 구하우스 12회 기획전 ‘데미안 허스트-새로운 종교’전은 시대를 통찰하는 정신이 흐르고 있다. 영국 출신의 데미안 허스트는 1965년생인데, 그의 작품 가격이 피카소나 반 고흐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한다. ‘존재의 삶과 죽음’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허스트의 전달 방식은 과격하지만 진지하다. 약품과 기독교적 상징들을 연결한 그의 작품은 현대는 의학이 중세의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여 ‘새로운 종교(New Religion)’로 기능 하고 있음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화법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다행히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에 서재처럼 꾸민 3번방은 편안하다. 소파에 앉아 운치 있는 서가에 꽂힌 미술 서적을 꺼내 독서할 수 있는 곳. 관람객이 앉도록 놓아둔 의자와 소파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애용해 더욱 유명해진 조지 나카시마의 작품이다.

프랑스의 조각가 자비에 베이앙(1963~)의 ‘모빌’은 애연가였던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1887~1965)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피우는 담배 연기는 줄로 이어져 공중의 동그란 청색 모빌로 연결된다. 건축기술로 한 건물에서 개인의 욕구와 공동체의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주거양식의 창안에 평생을 바친 르 코르뷔지에는 ‘집 같은 미술관’을 표방한 구하우스의 지향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서재 옆에 붙어 있는 침실에는 앤디 워홀(1930?~1987)과 팝아트 작품이 걸려 있고, 침상 위에는 백남준(1932~2006)의 조각이 놓였다. 화장실엔 벌거벗은 남자가 변기 옆에 웅크리고 앉아 새장에 갇힌 새를 바라보고 있다. 중국 작가 핑이잉의 작품이다.

거실처럼 넓은 5번방은 생존하는 화가 중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호크니(1937~)의 최신작인 ‘Pictures on an Exhibition’이 걸려 있다. “사진일까요, 그림일까요? 저 그림 속에 작가 호크니가 있는데 어디에 있을까 찾아보세요.” 호크니의 작품이 걸려 있는 스튜디오 안에서 그림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멜빵바지를 입고 담배를 들고 벽에 기대서서 젊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살집이 풍만하고 선한 인상을 가진 사람을 가리켰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 바로 맞추셨네요! 저 드로잉 작품은 제작 과정이 좀 특별해요. 각기 다른 날짜에 스튜디오를 방문한 사람들을 여러 각도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을 디지털 합성해 대형 프린터로 출력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거든요.” 그림일까 사진일까 궁금했는데, 눈치를 챈 큐레이터가 재치 있게 바로 알려준다. 팔십대 노인이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로도 즐겨 그림을 그린다는 데이비드 호크니도 영국 출신이다!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해 있는 구하우스미술관은 2016년 1월 개관했다. ‘집’을 콘셉트로 침실, 서재 등 생활공간 속 예술과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구하우스미술관 전경/아기자기한 소품 및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라운지. 윤원규기자

■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한 작가의 작품과 마주하다

2층 전시장에는 우리의 귀에 좀 더 익숙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피카소, 앤디 워홀, 백남준, 줄리안 오피, 막스 에른스트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다. 한 곳에서 이런 대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아담한 정원에는 가을꽃이 향기롭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난 산책로를 걸으니 보랏빛 건물이 반긴다. “게스트 룸이에요. 작가들이 생활하는 곳이죠.” 볼 일이 없더라도 게스트 룸에 붙어 있는 화장실은 꼭 들어가 봐야 한다. 아름다운 컵들로 장식한 화장실 풍경은 한번 보면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2021년 전시공간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조지 몰튼-클락(George Morton-Clark)?‘신화, 영웅 그리고 미친 과학자’전이 열리는 전시실도 독특한 공간이다. 2022년 1월16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의 문법을 배울 수 있다. 조지 몰튼-클락. 그의 작품은 얼핏 어린아이가 스케치북에 휘갈겨 그린 낙서를 닮았다. 미키마우스, 톰과 제리, 도라에몽, 도날드덕, 쿠키몬스터, 핑크팬더, 호빵맨 등 동서양 대중문화 친숙한 캐릭터와 강렬한 단색과 원근 없는 평면적 구도, 비정형의 선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화면…. 그 혼란을 뚫고 불쑥 떠오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몰튼-클락의 예술 세계에 뿌리가 되는 모티프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이렇게 소개했다. “만화에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연결고리가 있다. 배움의 기회가 많았던 유년 시절, 우리는 모두 만화를 보고, 그 캐릭터들과 함께 성장했다. 내게 만화 캐릭터는 추상화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그릇이다.”

2층 전시실에서 바라본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작품이 인상적인 서재방. 윤원규기자

■ 창조적 영감이 샘솟는 젊은 공간

코로나19로 사립미술관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 지난해와 올해에 구하우스미술관은 오히려 관람객이 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설립자 구정순 관장이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23세 때, 첫 직장에서 받은 보너스 20만원을 털어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구 대표가 40년 동안 모은 소장품은 약 400점에 달한다. 미술관을 둘러보니 구 관장의 예술적 감각과 미감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구 관장은 기업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CI(Corporate Identity)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 ‘디자인 포커스’의 대표이기도 하다. 1983년 설립된 디자인 포커스는 KB국민은행, KBS, 처음처럼, S-OIL 등 국내 굴지의 기업 CI를 제작한 회사로 유명하다.

편히 쉬어도 좋을 나이에 전혀 새로운 분야인 미술관을 왜 시작했을까?

“오래전부터 나이가 들면 미술관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컬렉션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청소년을 위한 미술관도 생각했지요. 미술은 의식주 안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술작품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에요. 삶의 예술, 그것은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어요. 집처럼 편한 분위기에서 미술품을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설립한 것이지요. 제가 만든 커다란 집에서 다양한 창조적인 영감을 얻기를 소망합니다.”

구하우스 소장 미술품은 개념주의 미술 작품이 많다. 현대미술은 역시 난해하다. 이를 이해하고 즐기려면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첫 만남을 피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작품에 붙인 설명문만 읽어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구 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반려견 ‘융’이 다가온다. 아직 한 살밖에 되지 않은 푸들인데, 순한 눈매와 날씬한 몸매가 사랑스러운 아이다. 양평 구하우스미술관은 무뎌진 감성과 굳은 생각을 푸릇푸릇하게 바꾸고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는 회복과 재생의 공간이다. 미술관 가까운 곳에 ‘황순원 문학촌 소나기마을’과 ‘잔아문학박물관’이 있으니 함께 찾아보시길. 구하우스처럼 두 곳 모두 젊은 생각이 숨 쉬는 공간이다.

별관에 전시 중인 조지 몰튼-클락의 ‘선택된 난민들’. 미키마우스 등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현대사회를 조명한다. 윤원규기자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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