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그의 가장 큰 죄, 그건 용서 빌지 않은 죄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이라 했다. 사람이 사는데 곡절이 많음을 말한다. 시련과 풍파가 많은 것을 이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생에 더 없는 말이다. 짧은 영화와 긴 오욕의 세월을 살다 갔다. 돌이켜 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그랬다. 사자명예훼손죄 피고인 신분이었다. 오는 29일 그 최종 변론 기일이 잡혀 있었다. 같은 날 검찰 구형도 있을 예정이었다. 재판 절차상 전두환의 신분은 ‘재판 도중 사망한 피고인’으로 남았다.

5ㆍ18로 잡은 권력은 8년이다. 11대ㆍ12대 대통령이 그 정점이었다. 그 후 대가의 시간 33년을 보냈다. 12ㆍ12쿠데타 등 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면으로 출소했으나 또 다른 대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직 국가 원수의 권리를 다 잃었다. 모든 걸 몰수당했다. 여기에서 공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5ㆍ18 영령이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가장 정통성 없는 대통령, 가장 폭압한 대통령, 그래서 가장 실패한 대통령이 됐다.

그게 전부는 아니다. 경제 업적이 분명하다. 물가를 안정시켰다. 28.7%(1980년)에서 3.05%(1987년)로 낮췄다. 첫 재정 흑자 시대였다. 1961년부터 1986년까지 적자였다. 무역 흑자시대도 그때 처음 열렸다. 앞선 박정희 정부, 뒤의 노태우ㆍ김영삼 정부가 다 무역적자다. 국제 환경에 힘입은 바는 있다. ‘저금리, 저달러, 저유가’의 3저 시대였다. 그럼에도 용인술에서 발현된 그의 경제 실적은 가감 없는 수치로 남아있다.

이런 공이 역사에서는 죄에 묻혔다. 무엇보다 반성치 않은 죄가 가장 컸다. 생애 내내 광주를 ‘사태’와 ‘폭동’이라 규정했다. 12ㆍ12쿠데타를 정당한 수사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2017년 처음이자 마지막 회고록을 발간했는데 거기에도 이런 의식을 고스란히 담았다. 결국, 이 ‘반성하지 않은’ 회고록이 그의 마지막 형지였다. 40년 전 그 ‘피의 땅’, 광주로 불려갔다. 피하고 싶었을 그 광주지법에서 그는 마지막을 보냈다.

애증 섞인 우정,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름여 전 별세했다. 12ㆍ12쿠데타의 공동 주범이다. 5ㆍ18 유혈 진압의 공동 책임자다. 똑같이 법정에 섰고, 똑같이 유죄를 받았다. 그런데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참회했다. 그 뜻을 몸소 보였다. 그런 그를 세상도 용서했다. 국가장으로 배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안 했다. 반성하지 않았다. 세상도 그런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죽음이라는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도 싸늘하게 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이렇게 정의했다. ‘어차피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 아니던가.’ 아름답게 남아 있는 슬픈 유언이다. 자연 앞에 공평해지는 죽음을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다만, 그 공평에 이르기 전 평가의 순간은 잊게 마련이다. 전직 대통령에는 이것이 권력 시절의 회고 또는 반성의 시간이다. 이 기회를 고집과 맞바꾼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이 시대 마지막 보는 권력자의 뒷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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