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에서 나설 후보들의 대진표가 확정됐으나 내년 대선이 희망과 기대가 희박한 ‘우울한 선거’로 치러질 공산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재명의 ‘공정 성장’,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 등 시대 흐름을 상징하는 구호가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현대 문명 도래 이후 가장 큰 충격파를 던진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여전히 구태 정치의 틀 속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해 국민 불안감이 크다.
사회 양극화, 불평등 등 심각해진 사회문제를 풀기 위한 단초를 어디서부터 마련해야 할까? 정부나 시장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지역과 공동체 가치를 제대로 살려야 경제가 살아나고, 지구를 기후위기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골목 경제와 자영업자의 활기가 지역경제에 직결되고 생활쓰레기 재활용률을 높여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공약 개발을 서두르긴 하나 지역 가치에 기반하지 않고 표 구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각 지역에서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가치를 디지털 기술로 새롭게 무장해 ‘로컬 진화’를 이루고 있다. 대도시의 집중보다 분산, 과거와 현재의 만남, 지역의 능동적 삶이 부각되는 현장을 수없이 발견한다.
‘한 달 살이’로 각광 받는 제주에서는 연극을 감상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해녀의 부엌’이 지역 콘텐츠로 주목받는다. 버려진 생선 위판장을 재생해 해녀들이 연극에 출연하고 뿔소라 톳 멍게 등 토속 해산물을 요리로 내놓아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부산 최초의 개항지인 영도 지역의 폐공장이 대형 크루즈 선박을 형상화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돼 베이커리 카페, 야외 피크닉공간,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일 3천명 넘게 찾아와 영도 바다 조망을 보면서 로컬 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지역 문화콘텐츠와 결합한 공간에 대한 MZ세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뜨겁다. 강원도 양양의 서핑 전용 해변 ‘서퍼비치’로 인해 양양이 강원도의 대표 여행지로 변신하면서 인구 증가의 기현상을 빚고 있다. 이런 사례는 전국 곳곳에 수없이 많다.
정치가 사소하고 일상적인 가치와 결합하지 않으면 자유, 평등, 민주화, 효율성과 같은 사회가치를 실현하기 어렵다.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최저소득을 넘어서는 사회적 평등, 재분배의 거대담론은 구체적 삶과 지역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인천에서 국내 최초의 세계 여행가로 불리던 고(故) 김찬삼 선생이 유럽 여행 때 타고 다니던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시민 지원으로 복원해 박물관에 전시했다. 일제 강점기 역사유산인 부평 에스컴미군부대 옛 병원건물과 미쓰비시 노동자숙소가 보존 및 활용이 도마에 올라 있다. 지방자치와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통해 지역가치를 문화자본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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