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 케어러’ 지원방안 마련, 복지 사각지대 해소해야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혼자 간병하다 극심한 생활고 속에 아버지를 굶겨 사망에 이르게 한 22세 청년 강도영(가명)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강도영은 편의점 폐기물로 끼니를 때웠고,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삶을 견디며 살았다. 지옥과 같은 날들을 겨우 버텨내던 그는 결국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이후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됐다.

어떤 이들은 강도영의 패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더 많은 사람들은 굶어 죽어간 아버지의 참담함을 지켜봐야 했던 청년의 고립과 무력감에 가슴 먹먹해 했다. 수천명의 시민 등 곳곳에서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1심, 2심에서 존속살인죄를 선고했다. 강도영의 비극에 국가는 ‘간병 살인’의 책임이 없는걸까. 누구보다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공적인 지원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도영 사건이 공론화 되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영 케어러(Young Carer)’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영 케어러는 소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을 부양하며 학업도 병행하는 상황에 놓인 25세 미만 청소년 또는 청년들이다. 보건복지부나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에서도 영 케어러에 대한 통계나 현황 자료가 전무하다. 그러니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이뤄졌을리 없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실이 영 케어러로 추정할 수 있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만 25세 미만 청소년ㆍ청년’이 지난해 기준 전국에 3만1천921명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중 19%가량인 6천106명이 경기도에 산다. 인천은 2천397명에 이른다. 이들 외에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ㆍ청년까지 고려하면 영 케어러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학업에 열중해야 할 시기에 부양의무를 떠맡아 생계 유지에 나서고 있는 영 케어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들의 희생은 개인적 부담이면서,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이제는 돌봄 책임을 가족에게만 전가하지 말고,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을 분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영국·호주·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해 입법 등을 서둘러야 한다.

김성주 의원이 영 케어러에 대한 실태조사와 국가의 체계적 지원을 명문화하는 ‘청소년복지 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금껏 영 케어러를 소년소녀가장이라 부르며 복지 대상이 아닌 일시적 관심과 시혜의 대상으로 인식해왔다면, 이번 개정안을 통해 법적 정의를 마련하고 체계적 지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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