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약속의 계절이다. 선거를 앞두고 쏟아지는 여러 공약은 차치하더라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인 만큼 올해 스스로와 약속했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스스로 다짐할 약속들을 챙겨보는 시간이다.
맺고 묶는다는 뜻인 ‘약속’이 사적인 영역에서 갖는 무게가 사회적인 영역에서 타인에 행하는 약속에 비해 가벼운 것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을 테고, 누군가 공공의 약속을 정치적인 이유로 내팽개칠 때 그 약속의 공허함 또는 약속한 자의 윤리를 성토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약속은 이행 여부에 못지않게 그 약속의 이후를 우리가 어떻게 진단하고 그로부터 다시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11월25일에 시작한 새 전시의 제목은 <캠프, 미디어의 약속 이후>이다. 여기서 ‘미디어’는 전기와 에너지, 교통과 교역, 텔레비전과 라디오, 영화와 비디오,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우리 삶의 매개체를 아우른다. ‘캠프’는 인도 뭄바이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작가 집단이자 스튜디오로서, 여러 예술가가 다양한 시민들, 기술자들과 협업하며 이러한 미디어의 문턱을 낮추는 참여적 작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네팔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델리의 한 마을에 CCTV 카메라와 케이블 TV를 결합한 일종의 수제 방송국을 만들고 반경 200m 내 주민들이 방송의 형태로 이웃과 소통하고 교류하도록 하였다. 보안과 감시의 목적인 폐쇄회로 시스템을 손수하는 방송 미디어로 전환하여 소수자, 소외자들의 열린회로 시스템으로 만든 것이다.
미디어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지탱하는 ‘환경’이다. 각기 다른 미디어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익숙한 기술을 낯선 방법으로 사용함으로써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여지를 찾아내고 표명하는 캠프의 작가들은 묻는다.
거대 미디어 인프라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그 매체 기술들이 약속했던 미래는 무엇이었는가, 그 미래에 도달한 지금 그 약속이 어떻게 지켜졌고 또 어떻게 지켜지지 못했는가? 그리고 약속과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면 그 기술들의 이후를 다르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시간의 경과를 뜻하는 이후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하는 작은 개인들이 모여 자율적이고 창의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꾸려 나가는 미디어, 그 힘들이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이 가리키는 ‘이후’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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