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쯤 된 아파트들이 난리다. 수돗물 틀 때마다 녹물이 나온다. 마시는 물이고 씻는 물이다. 일상생활에 닥친 재앙이다. 여기엔 확실한 구획이 있다. 1994년 4월 전과 후다. 그 이전 건축된 아파트가 사달이다. 그 이후 아파트는 괜찮다. 노후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관에 쓰인 아연강관 문제다. 시간이 흐르면 부식되는 재질이다. 정부가 1994년 4월부터 사용을 금지했다. 더 일찍 규제했더라면, 이런 재앙은 없었다. 국가 판단의 잘못이다. 적어도 정책 미비의 책임이다.
수도관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개인 또는 아파트 단위에서 엄두도 내기 어렵다. 그래서 경기도가 사업비 지원을 해오고 있다. 사업비가 커서 다 해주지는 못한다. 옥내급수관은 세대별 최대지원금 150만원 내에서 60㎡이하의 경우 공사비의 80%, 130㎥ 이하 30%를, 공용배관은 세대별 50만원 내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 저소득층은 전액지원 85㎡ 이하는 50%를 지원했다. 도와 시ㆍ군이 각 50%씩 분담한다. 2015년부터였으니 그간의 예산만도 상당하다.
버거웠던 모양이다. 경기도가 내년 예산을 꺾었다. 60억원을 28억원으로 스스로 줄였다. 도의원들이 들고일어났다. “상수도 부식에 따라 1기 신도시 주민들이 먹는 물을 녹물로 사용할 수 있어 건강 문제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개선할 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고양 출신 도의원의 질타다. 고양은 분당, 평촌, 산본, 중동 등과 함께 1기 신도시다. 1기 신도시들이 예외 없이 이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이 예산은 살아날 듯하다. 도의회 상임위가 일단 원래대로 돌려놨다.
물론 근본대책은 아니다. 미봉책일 뿐이다. 몇 년을 더 해야 할지, 얼마를 더 퍼부어야 할지 기약 없다. 노후 아파트로의 혈세 투입이 옳은지도 따져볼 일이다. 전국에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가 80만 가구를 넘는다. 2015년 이후 급격히 느는 추세다. 녹물 수도관 문제도 2024년까지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지방 정부가 틀어막기에 여간 버겁지 않다. 대책을 내야 하는데,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국가가 일정 부분 분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건축 허가로 문제 근본을 없애는 것이다.
이 문제를 ‘잘 사는 신도시 주민’만의 얘기로 여기면 안 된다. 1994년 이전에 건립된 아파트는 다른 곳에도 많다. ‘부자가 아닌 도심 서민’도 녹물 재앙에 고통받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사업비를 지원해라. 눈앞에 시급한 일이다. 재건축을 단축해 허가해라. 보다 근본적인 일이다. 많은 국민이 시뻘건 녹물을 받아내고 있다. 그 녹물이 점점 더 붉어지고 있다. 이들이 원하는 국가는 녹물 없애주는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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