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세밑 단상

유년시절 크리스마스와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12월이 되면 마냥 행복했었다. 친한 친구와 친지들에게 보낼 성탄 카드를 직접 만들면서 가슴이 설레었고, 성탄절에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받을 선물에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도심의 거리마다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도 모르게 가사를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던 기억이 새롭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명동거리나 지하철 역사 입구에 등장하는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모아뒀던 용돈을 집어넣던 가슴 뿌듯한 추억도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즐거웠던 것은 긴 겨울방학 썰매나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 겨울 놀이에 스케이트도 타고 눈싸움도 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듯 유년기의 연말연시는 많은 추억이 서린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청소년기와 성인이 돼서도 한동안 연말연시는 많은 의미를 가져다주곤 했다. 연하장에 간단한 인사의 글을 적어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소중한 분들에게 안부와 덕담을 건네고, 잠시 짬을 내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 새 출발을 다짐하며 겨울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각종 모임이나 직장 등에서의 송년회 또는 신년 모임으로 정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하던 소중한 시간이 가슴 한쪽에 자리해 있다. 저무는 한 해를 마감하고 기독교 신자이든 아니든 간에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희망의 새해를 준비하는 유의미한 시간이 바로 연말연시였다.

이처럼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만들어졌던 성탄절과 연말을 앞둔 세밑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 거리에 이 맘때면 울려 퍼졌던 캐럴은 성탄절이나 돼서야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고, 문방구와 구멍가게마다 걸려져 있던 크리스마스 카드도 자취를 감췄다. 점포마다 놓인 크리스마스 트리와 반짝이는 등불만이 유일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바일을 통해 상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편리함이 성탄 카드나 연하장을 대신하고 있다. 아이들 역시 연날리기나 팽이치기, 썰매 타기 등 겨울철 놀이 대신 온라인게임 삼매경에 빠진 지 오래다. 더욱이 최근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의 장기화로 인해 연말이면 인파로 북적이던 도심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너무 감성에 젖어든 탓일까.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달라진 연말연시 모습에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시대가 달라지면 문화도 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나 세밑의 풍경이 변했다고 해도 우리의 훈훈한 전통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연말연시면 답지했던 온정의 손길이 매우 줄어들었다고 한다.

세태는 변했어도 이 추운 계절에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들을 보살피고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기부와 나눔의 문화는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조윤혜 남서울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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