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웃어, 빙긋이

“1950년대 자유주의자가 진지하고 회의적인 성향이었다면, 1960년대 혁명가는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알았습니다. 누가 사회를 더 변화시켰을까요?” 1972년 정초에 백남준이 쓴 편지의 한 대목이다. 백남준아트센터 2021년 전시 <웃어>의 주제인 ‘플럭서스’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인 제도와 통념으로부터 미술을 해방시키고자 1960년대 일었던 혁명적인 예술 흐름이다. 백남준의 플럭서스 예술 또한 파격과 반격의 연속이었고 거기에는 언제나 웃음이 동반했다. 조롱이나 냉소가 아니라 천진하고 명랑한 웃음이다. 백남준에게 플럭서스는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순수해지는 것이었고, 백남준 특유의 유머는 그 순수함의 발로였다. 그리고 이는 백남준이 타인을 대하는 성정이기도 했다. “내가 바보니까 좋은 사람이 오는지 내가 똑똑하니까 좋은 사람을 찾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나요.” (백남준, KBS 인터뷰)

타인을 향한 앎의 정도는 그 인식의 스펙트럼이 사람마다 다르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이웃에 대해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매일매일 문자 톡을 주고받으며, 소셜 미디어에 일상을 공유하며 사이가 깊어진다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식의 관계들은 헛헛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맺는 마음의 감각이 구식인 필자는 이처럼 즉각적이고 동시적인 소통이 서로를 살피고 보살피는 곁의 마음을 다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여전히 믿는 편이지만, 그래도 온라인 매체가 이어주는 관계들을 발견하고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도 많다.

<웃어> 전시의 일환으로 열었던 ‘주간 플럭서스’ 톡 채널은 매주 한 번씩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악보’인 지시문을 발송했고 구독자들이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연주’하도록 했다. 백남준이 머리에 먹을 묻혀 바닥에 대고 선을 그어 나간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직선을 긋고 그것을 따라가라”라는 지시문을 발송했던 주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구독자가 자신의 거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쭉 풀며 뒷걸음질하면서 휴지를 풀고 반려 고양이가 그 앞에서 졸졸 따라가는 소박하고 유머러스한 영상을 올렸다. 플럭서스에 대한 공통된 관심으로 반년 동안 채널에 모여 전위적인 미술을 일상 속에서 기꺼이 향유하고 공유했던 구독자들은, 직접 만난 적 없어도 올해 필자에게 누구보다 가깝게 다가온 분들이다. 새해에는 이렇게 예술을 나누며 빙긋이 새어 나오는 웃음이 우리 삶을 조금은 더 낙관으로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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