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곡즉이실 사즉동혈

‘곡즉이실 사즉동혈(穀則異室 死則同穴)’, 중국 최고의 시집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글로 ‘살아서는 방을 달리하더라도 죽어서는 무덤구덩이를 함께 하리라’ 라는 뜻이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한 아내의 말이다. 여기서 ‘곡(穀)’은 살아있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전 어느 결혼식에서 주례선생이 신랑신부에게 여러 말씀 끝에 ‘살아서는 같은 방을 써야 하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을 써야 한다.(생즉동실(生則同室) 사즉동혈(死則同穴))’ 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본래의 이실(異室)이 동실(同室)로 바뀐 어원과 유래는 찾지 못하겠으나, 긴 세월이 흐르고 생활관습이 바뀌어서인지 지금은 ‘다른 방’이 ‘같은 방’으로 바뀌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주제 중의 최우선 순위는 건강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는 밤에 소변을 보기 위해 몇 번을 일어나게 돼 잠을 잘 못 잔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결국은 아내와 같은 방을 쓰냐, 아니면 각방을 쓰냐가 주제가 된다. 의외로 다수가 각방을 쓴다고 한다. 각방을 쓰는 원인과 이유가 각기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가 야뇨증(夜尿症)으로 일어나게 돼 배우자의 숙면을 위해 다른 방을 쓴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잠을 잘 자야 발육이 잘돼 잘 큰다고 하는 것처럼 잠을 잘 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년에도 마찬가지다. 잠을 푹 자면 이튿날 모든 활동도 순조롭고 컨디션도 좋아진다. 컨디션이 좋으면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편향시켜 결국 생활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느 심리학 교수는 수면시간만 바꿔도 인생이 바뀐다고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인가? 얼마 전 각방을 쓰던 사람의 돌연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마 각방을 쓰지 않았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응급처치나 치료 등으로, 적어도 생명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부부가 사랑하면 침대에서 칼날 같은 거리도 멀어지게 느껴지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넓은 침대도 가깝게 느껴진다’라는 말도 있다. 배우자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불편을 극복하며 서로 지켜줘야 한다. 내가 잠 좀 편히 자겠다고, 아니면 편히 자게 해야겠다고, 배우자와 떨어지려 하는 것은 멀어진 사랑의 표출이며 이기적 행동이다.

‘네가 잠 못 자는 사람의 심정을 알아?’ 할지는 모르겠다. 이제 부부가 살아서는 방을 달리한다는 수천 년 내려오던 생활관습이, 살아서는 방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기준으로 바뀐 세상이다. 진정 배우자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배우자가 떠난 후 후회치 않으려면, 오늘 당장 베개 위치가 나란히 되기를 권하고 싶다.

황용선 前 파주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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