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정보 교류도 못해 “등록금 낭비”
현장실습 중요 학과 실업 가중 우려
정부, 지원책 발표했지만 실효성 의문
“캠퍼스 로망은 버린 지 이미 오래고, 취업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경기남부 지역 전문대에 재학 중인 20학번 김한솔씨(21·호텔경영학과).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대학을 다녔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입학 당시 대학 생활을 설명해주는 오리엔테이션(OT)이 비대면으로 진행돼 동기가 누군지 아직도 헷갈린다. 전공 수업은 코로나19 여파로 1년 반 넘게 비대면으로 지속돼 이해도가 매우 낮다. 인턴십 등의 현장실습 경험도 못한 채 졸업을 앞두고 있다.
김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선배·동기들과 취업에 대한 정보 교류를 기대했는데, 단 한 번도 그럴 기회 없이 등록금만 낭비한 것 같다”고 한탄했다.
졸업을 앞둔 또 다른 전문대생 박하나씨(20·사회복지학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따려면 필수과목(16개) 이수와 함께 노인요양시설, 아동센터 등 현장실습 160시간을 채워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시설 또는 기관에서 받아주지 않아 졸업을 앞두고 겨우 시간을 채웠다고 푸념했다.
3년차로 접어든 코로나19 여파로 ‘코로나 학번 ’, ‘불운의 학번’으로 불리는 전문대생(20학번)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 졸업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제대로 된 수업이나 실습 하나 없이 취업 전선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5일 대학정보공시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경기도내 31곳의 전문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총 4만7천567명이다. 이들의 어려움은 각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연구소가 발표한 ‘2021년 상반기 대학정보공시 전문대학 지표 분석’을 보면 지난해 4주 이상 현장실습에 나간 학생비율은 5.9%에 그쳤다. 2019년 10.4%와 비교했을 때도 절반가량 떨어진 수치다.
취업난은 갈수록 심해지면서 청년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이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체감 경제고통지수 통계는 같은 기간 기준 청년(15~29세) 체감 경제고통지수는 27.2로, 2019년(23.3)부터 2년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대다수의 20학번 학생들은 45주(학기당 평균 15주) 넘게 온라인 수업만 받고 졸업을 해야 할 처지다. 특히 현장 비중이 높은 실기나 기업 실습 등이 필요한 학과일수록 대면 수업을 못 받은 채 졸업을 앞둬 올해 청년 실업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앞서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지난해 8월 ‘코로나19 상황 속 전문대 학생 취업역량 강화 한시 지원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전문대학 졸업자 가운데 미취업자 및 2022년 졸업예정자 약 3만명을 대상으로 국가공인 자격 취득 및 각종 교육 프로그램 이수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1인당 70만원 이내로 지원한다”며 “또 혁신지원사업, 전문대학 링크사업 등 올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학교마다 독려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불운의 ‘20학번’ 전문대생들 실습이 스펙인데… 2년간 노트북에 갇혀있다 졸업장
졸업을 앞둔 전문대생들이 사이버대학생(?)으로 전락했던 2년간의 공백으로 낙담에 빠졌다. 입학 이후 줄곧 비대면 강의만 진행하고, 전문대생의 필수 스펙인 실습조차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등 말 그대로 ‘배운 게 없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전공 분야의 취업 문턱까지 높아지면서 이들의 걱정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 나는 사이버대학생?… 노트북과 함께 한 2년
한국산학기술학회가 발행한 ‘COVID-19 이후, 비대면 수업 및 진로ㆍ취업 지도에 대한 전문대학생의 인식과 개선 요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대생들은 수업과 진로ㆍ취업 영역의 비대면 상황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대면수업과 달리 상호작용이 어려운 비대면수업은 전문대생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 중 하나로 꼽혔다. 이들은 커뮤니케이션 부족과 수업 집중력 하락 등이 비대면수업에서 파생되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연히 선ㆍ후배, 동기는 물론 교수와의 스킨십도 떨어져 취업과 관련된 정보 습득이나 체험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 전문대생 필수 스펙은 “실습인데…”
전문대생들의 취업 필수 스펙인 ‘실습’도 지난 2년간 꽉 막히며 사실상 기본적인 취업 조건을 충족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행여 실습이 진행되더라도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실습 취지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자격 면허를 취득하기도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일례로 사회복지사는 교과목 이수 기간에 따라 120ㆍ160시간의 실습시간을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 확산 이후 실습 80시간, 사이버강의로 진행되는 간접실습 40ㆍ80시간 이수 등 변형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실습 기관은 학생이 직접 찾아야 하는데 코로나19로 실습생을 받지 않는 기관이 많아지면서 전문대생들은 이 과정에서도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보육교사는 240시간, 간호사는 1천시간의 실습시간을 반드시 채워야 하지만 코로나 학번의 전문대생들이 이행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 코로나19로 더 높아진 취업 문턱
코로나19로 전문대생들이 주로 진출하는 항공ㆍ호텔ㆍ관광업계의 취업시장 문턱은 훨씬 더 높아졌다.
최근 신입 승무원 채용이 진행된 국내 한 저가항공사 공채에는 20명 채용에 3천500여명이 지원하며 17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코로나 이전 승무원 공채 경쟁률이 약 100대 1인 것을 감안했을 때, 그동안 이들 업계의 채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7월 관광숙박업, 여행업, 조선업, 항공기취급업, 항공기부품제조업, 면세점업 등을 고용위기업종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학성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역량개발지원실장(동양미래대학교 교수)은 “전문대 학생들은 실습을 대면으로 해야 하는 교육과정이 많지만, 코로나 학번 학생들은 대면 교육을 충실히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문대생을 대상으로 하는 추가적인 지원사업이 필요하다”며 “특히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 학생들이 피해를 많이 입은 고용위기업종에는 우선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수ㆍ한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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