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해양도시 인천] 軍 철책·콘크리트에 막혀… 잃어버린 ‘시민의 바다’

해안 시작 세어도 선착장부터 송도까지 67㎞ 해안선
사방이 군부대 초소·돌무더기… 항만 발전·매립 집중
송도유원지 내 해수욕장 폐장 뒤 바닷가 더 멀어져
市, 해양친수공간 조성 나섰지만 수년째 제자리걸음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해안선을 가로막은 철조망 너머로 콘크리트 시설물과 영종도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거리가 가까워도, 바다를 느끼는 체감도는 멀기만 하다. 박주연기자
인천 서구 청라동의 해안선을 가로막은 철조망 너머로 콘크리트 시설물과 영종도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거리가 가까워도, 바다를 느끼는 체감도는 멀기만 하다. 박주연기자

“확 트인 바다를 보고, 바닷물을 만져보고도 싶은데…. 콘크리트 담벼락과 철책 탓에 가까이 갈 수가 없네요.”

지난 7일 오후 1시께 인천 서구 왕길동 세어도 선착장 앞. 인천 해안의 시작점인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거리가 가까워도 체감은 멀다. 해안선이 모두 콘크리트로 메워져 있는데다, 위에는 철책과 가시 철조망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이날 성인 1명이 겨우 걸을 좁은 인도로 해안선을 따라 4㎞를 걸어봤지만 바다가 주는 청량감과 비릿한 갯내음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도로를 오가는 대형화물차가 뿜어 내는 매연 냄새 뿐이다. 경인항인천컨테이너부두에 도착하면 철책선이 없는 바다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해안선은 더이상 시민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예 사방이 철책으로 막혀 있고 마치 기름 범벅인 듯한 시커먼 돌무더기가 바다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다.

이어 동구 만석동 만석부두와 중구 항동7가 등에 있는 인천의 해안선 대부분을 둘러봤지만, 시민의 발걸음이 바다에 닿지 않는다. 모두 항구와 각종 항만 시설, 그리고 콘크리트 담벼락과 철책에 막혀 있다. 시민 A씨는 “동해안 등에서 보던 그런 바다는 아니더라도 파도의 철썩임을 느끼고, 그 파도에 발을 담그며 쉬었으면 한다”며 “하지만 인천의 바다는 이런 바다의 모습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다음날인 8일 오전 10시께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끝자락 해안길도 마찬가지. 바다를 메워 새로운 해안선이 자리를 잡았지만, 정작 바다로 가는 길은 모두 콘크리트로 막혀 있다. 심지어 해안선 짧은 구간을 지나면 수풀 더미에 가려 조금이라도 보이던 바다조차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 길을 달려 인천신항 컨테이너부두를 지나 해안선 끝에는 바다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겨우 인천 앞바다의 파도 소리를 만났지만, 정작 쉼터는 막혀 있고 군부대 해안초소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처럼 인천의 해안선이 되레 시민과 바다를 갈라놓고 있다. 매립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해안선이다 보니 모두 콘크리트로 삭막함을 주는데다, 군의 경계를 위한 철책, 항만 보안시설 등에 따른 출입 금지 때문이다. 전국 대부분의 해안선은 시민이 그 선을 넘어 바다에 발을 담갔을 때 시원한을 선사하지만, 인천의 해안선은 바다를 보고도 들어갈 수 없다는 큰 상실감을 준다.

9일 국립해양조사원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인천에서 강화군과 옹진군 등 섬 지역을 제외한 내륙의 해안선은 모두 134㎞에 달한다.

하지만, 이중 무려 절반에 달하는 67㎞는 철책으로 막혀 있다. 남은 해안선은 내항·북항·신항·경인항 등 항만구역이어서 시민들이 들어갈 수 없는데다, 나머지는 호안(제방을 보호하는 공작물)과 방파벽 등이다. 송도유원지 내 해수욕장이 지난 2011년 폐장한 뒤, 인천에선 시민들이 직접 바닷물을 만져보는 것은 물론 마음 편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천처럼 해양도시인 부산시는 해운대와 광안리 등 해수욕장 등이 있어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바다를 즐길 수 있고, 경기도 시흥시도 월곶해안로에 비록 콘크리트지만 파도를 만져볼 수 있는 알찬 공간이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인천시가 현재 해안선 곳곳을 해양친수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모든 해안선의 군의 철책 등을 걷어내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또 내항 1·8부두 등의 시민 개방도 일부 이해관계자들과의 문제로 수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임현택 가천대학교 교수·한국스마트해양학회 회장은 “인천시민은 지난 1843년 개항 이후 항만으로의 발전과 매립 등으로 모든 바다를 잃었다. 이제는 바다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단순히 바다 앞 공원이나 시설을 만들 것이 아니다”며 “시민이 바닷물을 직접 만져보는 등 즐길 수 있는 해양친수공간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 해안선따라 바닷길을 걷고 싶다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월곶해안로에서 나들이객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이 곳은 계단 8칸만 내려가면 바다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박주연기자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월곶해안로에서 나들이객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이 곳은 계단 8칸만 내려가면 바다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박주연기자

인천이 진정한 해양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해 ‘물의 공간’ 확보가 시급하다.

9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개항기 신문물이 들어오던 인천의 포구들은 갑문 등 항만시설과 군대의 보안시설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모든 해안선이 콘크리트 담벼락과 철책으로 바뀐 상태다. 이들 해안선은 항만·군 보안시설이란 이유로 해안선으로의 출입 통제까지 받는다.

더욱이 인천에는 지난 1937년 해안을 메워 무의도의 모래를 옮겨와 만든 송도유원지 내 해수욕장이 있었지만, 주변의 각종 난개발 등 탓에 2011년 폐장한 상태다. 송도해수욕장은 봄가을에는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자, 해마다 여름이면 수만명의 피서객이 몰려들며 인천을 대표하는 장소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곳엔 중고차 수출단지만 남았을 뿐이다. 현재 인천의 육지에는 더이상 시민이 바닷물과 함께할 장소는 없다.

반면 부산시는 종전 해수욕장을 지속적으로 유지·관리하며 더욱 시민과 어울릴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가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과 송정해수욕장 등의 모래사장이 이안류 등에 의해 계속 사라지자, 10년 전부터 해마다 해저 굴곡지, 바다 안쪽에 굴곡진 곳 등까지 모래를 투입하는 것은 물론 주변 정비를 하고 있다. 이들 해수욕장을 찾는 시민과 관광객은 지난해 기준 각각 504만명, 127만명에 달한다.

인천과 맞닿아 있는 경기도 시흥시도 해변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시흥시는 지역 대표 항구인 월곶포구에 시민들이 바닷물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둔 상태다. 찰랑거리는 바닷물에 아파트·횟집들의 화려한 불빛이 비치는 인도 600m 구간을 조성했다. 비록 모래사장이 아닌 인천처럼 콘크리트 구조물이지만, 계단 8칸만 내려가면 발끝에 바닷물을 적실 수 있다. 여기서 만난 시민 A씨는 “바다에 일몰이 일어나는 배경이 너무 멋있어 가족들과 자주 온다”며 “특히 만져볼 수 있는 바다가 눈앞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다.

시흥시는 이와 함께 정왕동 시화 MTV(Multi Techno Valley)에 위치한 거북섬에 인공서핑 웨이브파크를 개장하기도 했다. 월곶에서부터 시화MTV까지 15㎞가량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K-골든코스트(한국형 골든코스트)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도 이처럼 해안가 등에 ‘물의 공간’을 탄력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인천시가 지난해 해양친수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한 만큼, 전문가·시민 등이 함께 참여해 종전에 있는 해안 및 친수공간에 대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탁영식 ㈜건일엔지니어링 사장(도시계획기술사)은 “인천이 진정한 해양친수도시로 발전하려면 시민이 직접 바닷길을 걸으면서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올해부터 ‘2030 인천 바다이음’을 만들기 위한 목표 및 추진 전략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해양친수시설 등이 시민의 마음을 정화하고 즐길 수 있는 치유 공간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市 ‘2030 인천 바다이음’ 마스터플랜  -  시민과 바다를 잇는다​​​​​​

인천시가 올해부터 ‘2030 인천 바다이음’ 마스터플랜을 통해 시민과 바다를 잇는 해양친수공간 찾기를 본격화한다.

9일 시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 2030 바다이음 해양친수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인천을 개방적·재생적·상생적·보전적·국제적 해양친수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청사진을 그린 상태다. 국내 최초로 ‘해양친수공간조성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시는 앞으로 10년 단위로 인천해양친수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변경·수립해 나갈 방침이다. 여기에 해안 친수공간의 여건과 기본계획의 목표 및 추진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해양친수공간위원회’를 구성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논의에 돌입한다.

시는 우선 바다이음 프로젝트에 신규사업 39개(단기 15개, 중장기 14개)를 정하고, 3천89억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세부적으로 437억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인천 내항 상상플랫폼 조성사업 등을 통해 올해부터는 항만자산과 개항테마를 묶은 도시재생거점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다. 앞서 시는 지난해 8월 27억원을 들여 인천내항 1·8부두 및 인천세관창고 우선개방을 했다.

시는 오는 2028년까지 233억4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동구 해안도로변 산책로 조성사업을 끝낼 계획이다. 이 사업은 동구 해안가에 해안쉼터를 만들고 십자수로 매립 및 만석·화수부두와 연계한 해안 산책로를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시는 송도국제도시와 인근 지역을 잇는 워터프론트와 월미도 워터프론트 등 ‘인천형 워터프론트’ 구축도 구상하고 있다. 연수구 송도동 308의2 일대 7만7천873㎡에 조성할 예정인 ‘랜드마크시티 1호수변공원 사업’을 통해 시민 체험형 수변 광장과 전망카페, 편의시설 및 녹지 등을 만든다.

이와 함께 시는 남동구 고잔동 978 일대 아암대로 갯벌 해안산책로 조성사업을 통해 소래~남동공단 해안보행축에 철책 철거 등을 이뤄내는 한편, 장기적으로 이 길을 송도국제도시까지 이을 예정이다.

이 밖에도 시는 암호 프롬나드, 안암호 선셋로드, 정서진 선셋플랫폼, 청라 브릿지파크 등 ‘개방적 해양친수도시’를 구상하고, 재생적 해양친수도시를 구축하기 위해 개항장~월미도~소월미도~스마트 오토밸리~남항으로 연결하는 친수 네트워크를 형성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북성포구 친수엣지’, ‘연오랑 등대 친수보행로’. ‘항만 트레일 파크’, ‘8부두 하버배스’, ‘월미도 워터프론트’의 신규 친수공간으로 조성한다.

시 관계자는 “전문가와 시민 등의 의견 수렴 통해 진정성 있는 인천 바다이음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 김경배 인하대 교수 “미친 상상력에 실행력 더해야”

김경배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인천만의 해양친수도시 구축을 위한 방향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승훈기자

 

“‘미친 상상력에 실행력’을 더해야만 인천만의 해양친수도시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경배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인천이 해양도시로 진화하고자 추구해야 하는 방향에 대해 “인천과 상황이 비슷한 싱가포르는 바다를 메워 ‘다기능 복합도시(Mixed-use City)’와 ‘정원(가든스 바이 더 베이)’을 만들고 새로운 도시발전의 거점을 마련했다”며 이 같이 강조했다. 이어 “싱가포르는 글로벌 허브의 중심지로 꼽히는 공항과 항만의 역할에서 벗어나 새로운 해양친수공간으로 세계적 관광명소로 거듭났다”고 설명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주변 갑문을 활용해 세계에서 가장 큰 기둥 없는 온실을 만들어 냈으며, 독창적인 디자인과 역사 및 전통을 더한 설계로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냈다.

김 교수는 “캐나다 몬트리올 ‘보타 보타(Bota Bota)’는 인천 내항과 비슷한 구조지만 전혀 다른 해양친수공간을 만들어 냈다”며 “항만 기능이 줄어든 항구에 폐선박을 통해 사우나, 수영,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인공시설을 만들고 운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천의 섬 지역은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접근성이 더 나은 인천 항만 등 해안에 해양친수·문화 공간을 창의적으로 계획하고 조성해야만 새로운 해양도시로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계절이 분명하고 황톳빛 바닷물이 있는 인천의 특성을 고려한 인공해변을 만들고 운영해야 한다”며 “송도국제도시에 인공해변, 수변데크, 공원 등이 조성될 예정이지만 프랑스 센강, 영국 템스강 수변공간에 있는 인공해변처럼 한시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인천 내항은 ‘인천 바다의 거점’으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만큼, 시민 모두가 참여한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월미도 해안과 월미산부터 국립해양박물관, 상상플랫폼 등이 들어서는 내항은 해양도시의 랜드마크를 그릴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이 있다”고 했다.

이어 “송도·영종·청라국제도시 등의 접점까지 있는 내항의 해양친수공간 구축을 위해 정부와 시, 지자체, 시민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최근 시가 해양친수도시 조성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바다를 품은 해양도시 인천의 미래발전을 위한 진화가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예산과 세부 추진계획 등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인천시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이승훈·박주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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