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세터’ ‘황금의 손’으로 한 시대를 장식했던 배구인 김호철은 국내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도 명성을 떨친 세계적인 세터였다. 1978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가 보여준 현란한 토스웍에 당시 현지 언론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고 표현했을 정도다.
▶오랜 국가대표 선수 생활과 만 40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한 그는 이탈리아리그에서 3차례나 MVP에 올랐고, 1995년 이탈리아리그 클럽팀 감독으로 변신해 두 번째 팀인 트레비소를 리그 우승과 유럽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2003년 국내에 복귀한 김 감독은 난파선 위기의 현대캐피탈을 맡아 2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선수와 지도자로 화려한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같은 성격 때문에 자주 구설수에 오르내렸다. 이탈리아리그 선수 시절엔 범실을 범하고도 세터 탓을 한 동료를 관중이 보는 앞에서 엉덩이를 걷어찬 일화가 있다. 국내 감독 시절엔 작전시간 중 선수들을 호통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방송 리포터의 질문을 뿌리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에겐 ‘버럭호철’ ‘호통호철’이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묘한 웃음을 지어 ‘호요미’라는 또다른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호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불같은 성정에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배구팬들의 뇌리 속에 각인돼 있다.
▶지난 2017년 남자 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던 그가 4년만인 지난해말 67세에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선수, 코치의 이탈과 감독의 사임으로 좌초 위기에 있던 화성 IBK기업은행의 소방수로 등장한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여자팀을 맡는 것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다. 경험도 없는데다 무엇보다 강한 성격 때문이다.
▶주위의 우려는 기우였다. 비록 팀은 8연패 수렁에 빠져있지만 선수들을 특유의 호통보다는 웃으며 다독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명세터와 지도자로 명성을 떨친 그는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선수들의 신뢰감이 쌓여가고 있어 IBK의 연패 탈출은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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