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대리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다. 전자는 사건, 사고의 당사자가 갖는 심리적 어려움을 말하며 후자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자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말한다.
간접경험이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날 때 이를 대리외상(Vicarious Trauma)이라 하는데, 주로 경찰관이나 소방관, 간호사, 의사, 응급실 의료행위자, 심리치료사 등에게서 나타난다.
일반인도 반복되는 영상이나 관련 뉴스에 장시간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 유사한 형태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망·실종자 가족들이 PTSD를 겪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오천만 국민 모두 ‘대리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건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그 모든 일이 다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고 위로하려 한다. 그런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설령 위로를 받는다 하여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기에 위로를 받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거나 정말 그 뜻을 이해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경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다. 말이 필요 없다. 장황한 설명이나 미사여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슬픔을 당해 괴로워하며 심한 고통 속에 있는 자를 부둥켜안고 울어주라는 것이다. 망연자실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껴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뜨거운 눈물로 젖어 있는 내 얼굴을 그들의 얼굴과 손등에 비비며 소리 없이 있어 주면 그만이다.
절망과 좌절의 사람들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의 슬픔에 들어가 함께 울어준 자들의 눈물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을 향한 눈물이 마른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어쩌면 다음은 내 차례라고 생각하며 겸손하게 다가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자.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되자.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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