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일 년에 한 번씩 하게 되는, 어떻게 보면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이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그처럼 축하할 사건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벅찬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축하해 줄 수 있게 나의 곁에 있게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운명인가. 또한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갈수록 누군가를 추모해야 하는 기일도 하나 둘 늘어난다. 그 사람이 떠나갔음을 슬퍼하는 상실의 감정을 겪는 것으로부터, 그 사람과 함께했음을 점차 웃으며 추억하게 되기까지는, 떠난 이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몹시 긴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슬픔을 견디는 데 흔히들 조언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시간이 흐르면 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이제 내 안의 한구석에 평온히 스며들게 된다는 뜻이리라.
일 년 365일 중 하루에 불과할 수 있는 날을 생일과 기일은 특별하게 만든다. 1월29일은 백남준 작가가 떠난 지 16번째 되는 기일, 7월 20일은 태어난 지 90번째 되는 생일이다. 작가 미술관에서 그의 기일과 생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것은 일종의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백남준 탄생 90주년인 2022년, 태어남을 특별히 기리고자 하는 올해에 맞는 추모일의 의미는 그만큼 남다르게 다가온다. ‘영원성에 대한 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백남준의 <교향곡 5번>이라는 작품 첫머리이다. 그리고 ‘우리가 연주하는 순간은 우리가 연주하는 작품만큼 중요하다’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닦아 나가는 것이 자신의 예술이라고 믿었던 백남준은 영원히 길이 남을 완벽함을 좇기보다 매 순간의 실험과 도전을 귀하고 충실하게 여기는 예술을 노래했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에 거침없이 달려들었던 백남준은 ‘이전에 아무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을 하는 경험’이 ‘근본적으로 사랑을 위한 경험’이라고 했다.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 되길 바랐던 작가가 말한 ‘오래’는 그저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매년 돌아오는 기일과 생일이지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순간순간을 생기 가득하게 채우고 싶다. “너무 완벽하면 신이 노한다”고 백남준이 농담처럼 말했듯이, 완벽하지 못할까 봐 움츠러들었던 일에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며 함께 웃고 즐거울 수 있는 순간들 속에서 예술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많은 이들에게 깃들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2022년 1월29일은 즐거운 백남준 추모일이 될 것이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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