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창대했다. 판문점 남북 간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은 추상과 공론(空論)의 영역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종전 선언 역시 현 정부 임기 내 달성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연초 북한이 발사한 각종 미사일은 앞으로 새 정부에게도 만만치 않은 대북 정책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사실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 보유 옵션은 양보할 수 없는 카드이다. 정권 생존을 지속해 나가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안보정책이다. 미국이 내세우는 ‘전략의 틀’은 기존의 핵확산 금지 조약 등을 통한 비확산과 선제공격도 불사하는 반 확산 전략, 절대적 핵전력 우위 확보를 목표로 한 미사일 방어(MD) 등 일종의 ‘공세적 현실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점이다. 이미 미국은 트럼프 시절에도 시리아 공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전격적으로 단행하며 이를 증명해 보였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포용보다는 강성’의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바이든 정부 역시 점차 증대되고 있는 ‘대량파괴 무기(WMD)로부터의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 방지’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은 얼마든지 검토될 수 있는 사항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재의 한미 동맹은 좀 더 현실적으로 조정될 필요는 있지만, 양국 간의 동맹과 결속은 더욱 돈독해져야 한다. 만약 남북 간 위기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공조를 어떻게 잘 유지하면서 긴장관계를 풀어 가야 하는가 하는 것은 우선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결국 핵 및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는 북한에 대한 억제태세 강화와 우리의 안보차원에서도 한미 간 동맹은 어느 시기보다도 중요하다.
최근 대선 정국의 안보상황도 우려된다. 선제타격에 대한 논쟁은 진영 간 ‘험악한 레토릭’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 중간 패권 다툼 등 최근 주변국 정세도 우리에게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사항들이다. 그러나 정치는 총칼로 하는 전쟁을 말로 하는 싸움으로 순치(馴致)하는 행위다. 상대의 승리가 악의 승리이고, 우리 편의 승리가 선이라고 믿는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대전환의 시대, 이제 “한미 동맹관계는 단순히 좋은 동맹이 아니라 위대한 동맹”이라고 한 미국의 발언도 외교적 수사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양국 간 굳건함을 과시하는 효과가 되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하지 못한 대북 정책의 아쉬움도 남북의 평화공존과 강한 국방력으로 국민의 안보 불안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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