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무렵, 유럽과 미국에 수많은 전쟁고아가 생겼다. 국제 사회는 인도적 차원에서 전쟁고아들을 위해 많은 재정을 지원했다. 그 결과 현대적 시설을 갖춘 훌륭한 보육원들이 많이 생겨났고, 전쟁고아들은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에서 굶주리는 일반 가정의 아이들보다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보육원 아이들이 가난한 보통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성장 발육이 느리다는 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병에 대한 저항력도 약했고, 심지어 가벼운 질병에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더 좋은 조건 속에서 생활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많은 의사와 학자들은 알 수 없었다.
훗날 밝혀진 원인은 바로 ‘애정 어린 터치’에 있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보통 가정의 아이들이 받을 수 있는 포옹이나, 쓰다듬어 주기와 같은 애정 어린 터치를 전혀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발육에 악영향을 주었고, 심지어 병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뜨려 가벼운 질병에도 목숨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터치는 치유다>의 저자 줄스 올더(Jules Older)는 대다수 환자들이 터치를 원하고 있으며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따뜻한 손길을 통해 안도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좋은 의사는 잘 어루만져주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터치를 통해 마음을 어루만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사랑이 전해지고, 용기와 희망이 전달되면 살 수 있다. 살 힘을 얻을 수 있다.
배금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에 물든 현시대에 많은 사람이 돈만 있으면 건강도 살 수 있고, 사랑도 살 수 있고, 명예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이어주고, 세상이 아직 살만한 아름다운 곳이라는 믿음은 돈이 줄 수 없다.
사람을 살리고, 살아갈 용기를 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 존재의 목적에 맞게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 그 모든 것은 마음을 만져주는 ‘터치’로부터 시작된다.
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의 이유를 공감해 주는 영혼의 터치, 가슴 깊이 담아둔 삶의 애환을 만져줄 수 있는 긍휼의 터치, 영혼에 평안을 주고 구원의 기쁨을 주는 사랑의 터치 말이다.
화려한 수식어구로 위로하려 애쓰기보다 함께 울며 침묵으로 안아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픔을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어깨를 토닥여 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며 거친 세상을 살아낼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우리에게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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