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좋은 삶에 투표하자

밤새 충만해진 삶의 비전과 꿈도 다시 아침이 되면 냉혹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진학, 취업, 임금, 결혼, 집 마련, 육아, 노후 등 장님 코끼리 만지듯 각자만의 현실에서,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풍요로운 듯 보이는 사회가, 사실은 의도된 결핍과 희소성으로 가득 차서 사람들을 각자도생의 격투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내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되짚어보면서 사람들과 더 좋은 삶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한다는 것은 배부르고 시간 넉넉한 사람들의 한가한 놀음쯤으로 전락해서, 오히려 ‘좋은 삶’이 절박한 사람들일수록 유일한 구원의 대안만을 쫓게 하여 전체주의를 조장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불안한 처지를 악용해서, 정언명령처럼 맹신하는 GDP 따위의 국가지표를 우상향으로만 유지해야 한다고 악악대는 정치인들일수록 사기꾼일 가능성이 크다. ‘성장’ 자체만을 ‘신물(神物)’처럼 숭배하고 자유로운 삶을 포기하라고 현혹한다. 하지만 이렇게 살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 지구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기에 필요한 만큼 충분하게 주고 있고, 문명사회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과 사회경제적 기회를 만들고 있다. 단지 나누지 못할 뿐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자리다. 선거제도가 민주주의 이상을 다 갖다주지는 않는다. 현실을 보면 최선이 아니라 그저 최악을 추려내는 과정에 가깝다. 최악은, 세상을 갈아엎고 모두를 구원하겠다고 ‘주문’을 외우는 자들이다. 권력은 다 누렸으면서 피해자인 척, 불의에 저항하는 척 악악대는 자가 사기꾼이다. 유력한 정당의 대선 후보자는 이미 막강한 권력자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마치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처럼 ‘저항’을 흉내 내는 것은 그 자체로 무능이고 몰염치이다. 그러니 남이 보거나 말거나 안하무인이다. 이런 어리석은 자일수록 현실적 삶의 디테일에 약하고 전쟁 같은 하이리스크에 배팅해 국민의 미래를 노름판 판돈처럼 불태워버릴 수 있다. 대통령은 탁월하게 잘해야 하는 자리이다. 이미 공부가 완성되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인사로만 메울 수 없는 대통령 개인의 역량이 꼭 필요하다. 잘 모르겠다고 웃음으로 때울 수도 없다. 국가적 정책은 작은 디테일 하나에서 엄청난 격차가 난다. 현장에서 순발력은 말할 것도 없고 아는 명시적 지식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창의적으로 연결하고 활용할 수 있는 암묵적 지식으로 높은 수준의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최빈국이나 저개발국이 아니라 세계 10위권 안의 경제 규모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이 물질적 부를 쌓고자 자연과 개인의 삶과 사회에 씻기 어려운 상처들을 입혀왔다. 이젠 돌봄과 치유가 필요하다. 다른 시각과 접근으로, 외교와 국방, 식량위기, 기후위기와 에너지전환, 생태계위기,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에서, 어떻게 다시 사회를 조직할 것인지 전략과 실천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러한 난제들이 버무려져 있는 수많은 현장에서 선택과 판단에 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탁월한 순발력은 필수이고 토론 역량이 중요하다. 선거만으로 완벽한 최선을 선별하기는 어렵지만, 이상적이진 않아도 국민과 함께 더 좋은 삶을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온 지적인 생명체처럼.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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