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세계 평화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말이 있다. 원래 군사용어인 프랑스어인데, 전쟁터 맨 앞에서 경계, 수색, 장애물 제거 임무를 맡아 부대의 전진을 확보하는 첨병을 뜻한다. 이 말이 예술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상에서 위기에 처한 예술을 급진적으로 개혁하고자 등장한 경향을 일컫는다. 20세기 초의 이 같은 예술 작품들을 특정해 가리키던 아방가르드는 혁명적인 예술이라는 의미로 광범위하게도 쓰이게 됐다.

백남준 탄생 90주년의 포문을 여는 백남준아트센터의 첫 전시는 바로 이 아방가르드가 핵심어다. 새로운 매체, 새로운 예술, 새로운 지평을 찾아 앞서서 길을 나섰던 아방가르드 예술가 백남준을 조명하기 위해서다. 백남준의 열 가지 결정적 장면을 플래시백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이 전시의 제목은《아방가르드는 당당하다》이다.

백남준의 아방가르드는 예술을 개척하는 일만이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의 시대를 살며 백남준은 세계평화와 소통의 문제가 예술가에게도 가장 긴급한 사안이라 보고, 자신의 예술이 이에 일조할 수 있도록 깊이 사유하고 힘껏 움직였다. 아방가르드는 인간의 선한 의지, 떳떳한 양심으로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선봉에 서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1970년대에 “세계 평화와 지구 보존이야말로 최고의 공익”이라 천명하고 세계에 대한 아방가르드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지구의 곳곳을 연결하는 방송의 형식으로 다양한 작품을 만든 바 있다. 국경을 넘어 널리 퍼져 나가는 방송이 냉전 시대 ‘철의 장막’에도 구멍을 뚫을 만큼 평화의 매체로 쓰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 아름답고 고요한 강을 찬미합니다. 피의 강이라고도 하네요.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 피와 눈물의 강에서 희생되었을까요? […] 우리는 수십 마일에 이르는 테이프들이 정글을 감싸는 것을 발견했죠. 지금 우는 것처럼 보이네요. 이것은 빗물일까요, 눈물일까요?” 2차 세계대전의 가장 격렬한 전장 중 하나였던 남태평양 과달카날 현지에서 백남준이 직접 제작하고 뉴욕에서 방송했던 비디오 작품 <과달카날 레퀴엠> 속 내레이션이다. 그리고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우리는 또다시 전쟁의 참황을 목격하고 있다. 방송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전쟁의 비극은, 진부한 구호인 것만 같았던 ‘세계 평화’를 또다시 절실히 외치게 한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