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가 펼쳐진 지난 2월13일. 방송 해설을 하던 전 ‘빙상 여제’ 이상화가 눈물을 흘렸다. 자신보다 세살 위 오랜 친구인 일본선수 고다이라 나오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500m서 17위로 부진한 직후다. ‘반일 감정’이 강한 국민정서로 볼 때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나 둘이 10여년간 오랜 세월을 빙판에서 경쟁하며 국경을 넘어 우의를 다져온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안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을 관심있게 본 국민이라면 더 이해하기 쉽다.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 대회와 2014년 소치 대회에서 500m를 2연패한 뒤 열린 평창대회서 고다이라에 막혀 은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고다이라는 자신보다 늦게 경기를 한 이상화에게 다가와 안아주며 위로햇다. 이 모습은 오랫동안 국내 팬들에게 회자될 정도로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훗날 이상화는 당시 안방에서 3연패를 달성해야 한다는 국민적 기대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해 마음을 짓눌렀다고 소개했다. 그런 이상화로서는 이번 올림픽서 수성에 나선 친구의 심리적 압박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눈물을 흘린 것이다. 오랜 라이벌이면서도 진정한 우정을 보여준 한·일 빙상 스타의 모습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포츠는 경쟁을 통해 승부를 가리고 승자는 승리의 달콤한 열매를, 패자는 패배의 쓴 맛을 느끼는 것이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하지만 승부의 결과만으로 명암이 갈리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스포츠 현장에서는 결과를 떠나 훈훈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물론 정당한 승부를 겨룬 상황하에서다. 승자는 패자에 대한 위로와 아량을, 패자는 승자에 대한 진정한 존경과 축하를 보내기에 스포츠가 아름다운 것이다.
경쟁에 있어 ‘명승부’는 박진감 넘치는 좋은 경기내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화와 고다이라처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상대의 마음까지 읽을줄 알아야 결과를 떠나 명승부를 연출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반칙이 정당화 되고, 좀처럼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가 보편화 돼있다.
지난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는 1, 2위간 격차가 0.76%p 차이로 당선자의 운명이 갈린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내용으로는 가히 명승부라 불릴만 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가 진정한 명승부가 되기 위해서는 당락을 떠나 상호 존중과 배려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바라보는 협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조윤혜 남서울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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